신장이 필요한 남자 vs 돈이 필요한 여자…'가짜 결혼'에 안방 울고 '명품 연기'에 시청률 웃었다
웨딩드레스 촬영을 하는 남녀의 표정이 어둡다. 유이는 웃음기 없이 드레스를 입고 자세를 취한다. 이서진은 한술 더 떠 화가 난 듯한 표정에 짜증 섞인 말투로 응대한다. 왜일까. 진짜 웨딩 촬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서진은 어머니(이휘향 분)에게 신장 이식을 해주기 위해 돈이 궁한 ‘싱글 맘’ 유이와 가짜 결혼을 해야 한다. 현행법이 가족에게만 신장 이식을 허용하고 있어서다. 결혼사진을 통해 두 사람이 진짜 가족임을 병원에 증명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병원의 심사는 예상보다 까다롭다. 두 사람은 난관을 이겨내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제작진이 예고한 대로 사랑도 성취할 수 있을까.

신장이 필요한 남자 vs 돈이 필요한 여자…'가짜 결혼'에 안방 울고 '명품 연기'에 시청률 웃었다
토·일요일 오후 10시에 방영하는 MBC 주말극 ‘결혼계약’(극본 정유경, 연출 김진민)이 지난 5일 첫회 시청률 18.4%(TNMS 수도권 기준)를 기록한 이후 고공행진하고 있다. 시청자는 찬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서진 엄마도 안됐고, 이서진도 안쓰럽고, 유이는 더 가슴 아프고. 너무 슬펐어요.” “주인공 둘 다 별로 좋아하는 배우가 아니었는데, 팬이 될 거 같아요.”

이 드라마는 삶의 가치가 돈뿐인 남자와 벼랑 끝에 몰린 여자가 돈을 매개로 만나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표면적으로는 ‘신데렐라’ 이야기다. 이서진이 맡은 한지훈 역은 ‘금수저’ 도련님이자 냉정한 사업가다. 반면 유이가 맡은 강혜수 역은 사별한 남편이 남긴 빚 독촉에 시달리고 아이까지 달린 싱글 맘이다. 주인공이 미혼이었던 동화보다 훨씬 악조건이다. 유이가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사랑을 이루려면 신데렐라보다 극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신장 이식’이 첫 단추다.

신장이 필요한 남자 vs 돈이 필요한 여자…'가짜 결혼'에 안방 울고 '명품 연기'에 시청률 웃었다
두 남녀의 이야기가 일반적인 로맨스와 달리 역순으로 진행되는 게 이채롭다. 돈을 매개로 계약결혼을 한 뒤 사랑을 향해 다가선다. 이건 너무 쉽지 않을까.

하지만 드라마는 ‘인생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격언을 곧 떠오르게 한다. 유이의 어린 딸이 사랑의 험난한 과정을 대변하는 복병으로 등장한다. 어린 딸은 차갑고 냉정한 아저씨인 이서진을 싫어해 달아나려고만 한다. 이서진은 병원에 가족처럼 보이려면 딸의 마음을 얻어야만 한다.

이서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구애 작전으로 색다른 재미를 준다. 시청자가 이들에게 희망을 갖는 이유는 이서진이 어머니를 아끼는 효심 때문이다.

드라마는 무엇보다 현대인에게 돈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돈이란 운명의 소용돌이를 관장한다. 인간을 나락으로 밀어내고, 천상으로 끌어올리기도 한다. 사회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1등 조건이며, 개인의 감정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일깨워준다.

돈의 연결고리가 없었다면, 유이는 이서진의 차디찬 언행을 견뎌내지 못하고 일찌감치 떠났을 것이다. 혼외 자식인 이서진이 어릴 때 생모를 떠나 부유한 아버지와 함께 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유경 작가는 집필 동기를 이렇게 말한다. “드라마를 통해 우리는 지금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인지,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잠시나마 되묻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좋겠어요. 사막처럼 황량해진 우리들의 영혼에 ‘괜찮아, 힘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