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애호가 김모씨 이야기

[Law&Biz] '짝퉁 미술품' 팔아넘긴 의사 부부 무죄된 사연
“형, 팝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 작품 ‘M-Maybe’가 시장에 나왔는데, 살 생각 있어? 크리스티에서 400억원에 팔리는 그림인데 200억원에 넘길게.”

평소 알고 지내던 장모씨에게 연락이 온 것은 2008년 8월이었다. 장씨는 아내 최모씨와 함께 치과의사로 일하며 작은 화랑을 운영했다. ‘몇 년만 갖고 있다 경매에 400억원에 되팔면 200억원 차익이 남는군.’ 문제는 진품 여부였다. 장씨는 이런 말을 던졌다. “계약금으로 30억원만 주면 그림을 한국으로 가져와 전문 감정사에게 감정을 받게 해줄게. 진품이 아니면 계약금을 돌려주거나 앤디 워홀의 자화상 작품으로 대체해줄게.” 이튿날 장씨 부부 딸의 계좌로 10억원을 송금하고 확약서를 썼다.

나는 닷새 뒤 자기앞 수표로 20억원을 전달했고, 세기의 화가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은 우리집 거실에 걸렸다. 약속대로 장씨는 그해 9월 크리스티 직원인 오르도스 필라와 서울지사장 등을 불러 그림을 감정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크리스티 측에서 “캔버스가 그 시대 캔버스가 아니고 사용한 감청색 물감이 1960년대의 것과 다르다”고 말한 것이다.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 치과의사 부부 이야기

오랜 기간 미술품을 거래해온 함모씨에게 연락이 왔다. 프랑스 파리에 사는 함씨는 독일 루드비히 미술관에 있는 ‘M-Maybe’의 또 다른 진품을 찾아냈는데 150억원에 팔아줄 것을 의뢰했다. “진품은 보증할게. 1969년 당시 만든 도록까지 선물로 함께 넘길게. 도록 구하기 어려운 거 알지?” 함씨와는 앤디 워홀, 게오르그 바젤리츠, 탐 웨슬만, 로버트 인디애나 등 유명작가의 작품 9점을 거래해왔던 터라 진품 여부를 의심하지는 않았다. 나는 혹시나 몰라 아내와 함께 경매회사인 크리스티에 “만약 101×101㎝ ‘M-Maybe’ 작품이 존재한다면 가격이 얼마나 되느냐”고 이메일을 보냈다. 크리스티에선 “그 가격은 미화 3000만달러(약 340억원)에서 5000만달러(약 566억원) 정도로 평가한다”는 답변이 왔다. 나는 혹시나 몰라 크리스티 직원이 국내에 올 것이란 정보를 입수하고 그에게 진품 감정 의뢰서를 보냈다. 크리스티 측에선 와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장 선생, 한국으로 입국하는 유학생에게 그림 운반을 부탁했어요. 내 처남이 그림을 선생 병원으로 가져갈 겁니다.” 나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작품을 넘기기로 한 김씨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어느날 김씨는 나를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법원의 판단은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5부(부장판사 김동아)는 지난 8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장씨와 최씨에게 “이 사건 그림이 모사품임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취지의 피고인들 주장이 일부 모순되고 석연치 않은 면이 있기는 하나 이 사건 공소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충분히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그림을 감정하면 바로 모사품이라는 사실이 드러날 것임에도 불구하고 피고인들이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이 사건 그림에 대한 감정을 약속할 이유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항소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