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교정학원 수강생 갈수록 증가…전문가들 "유년기 교육 중요"

악성(樂聖)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소문난 악필(惡筆)가였다.

그의 명곡 '엘리제를 위하여'(Fur Elise)는 원래 '테레제를 위하여'(Fur Therese)였는데, 출판사 담당자가 베토벤의 글씨를 잘못 알아보고 적은 것이 그대로 굳어졌다는 설이 있을 정도다.

이처럼 악필은 때로 역사의 작은 에피소드가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숨기고 싶은 콤플렉스다.

한글날을 앞둔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글씨교정학원에는 평일 오후인데도 매시간 수강생 2∼3명이 나와 교육을 받았다.

대각선을 힘주어 긋는 연습을 하던 직장인 박모(41·여)씨는 "글씨를 너무 못 써서 누가 쳐다보면 글이 안 써질 정도로 콤플렉스가 심했다"고 털어놓았다.

박씨는 "30회가량 수업을 받아 지금은 글씨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안 좋은 버릇이 튀어나오곤 한다"면서 "굳은 손이 빨리 풀렸으면 좋겠다"고 말하고는 다시 선 긋기 연습에 집중했다.

이 학원을 13년째 운영한 유성영(49) 대표는 우리나라의 지나친 '선행학습'이 악필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가정에서 대충 글씨를 가르치니 처음부터 안 좋은 습관이 밴다는 것이다.

또 유년기에 학습량이 지나치게 많다 보니 손 근육 등 신체의 발달 속도보다 지식을 쌓는 속도가 너무 앞서 손이 머리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도 우리나라에서 유독 많이 일어난다는 게 유 대표의 설명이다.

유 대표는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 세대도 아니고 태블릿 세대여서 '타자'보다 '터치'를 더 많이 하는데, 그렇다 보니 손의 힘이 이전 세대보다 더 떨어진다"면서 "아이들이 말 그대로 손에 글씨 쓸 힘이 없어서 교정을 받으러 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아이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학원은 5년 전보다 수강생이 30%가량 늘었다.

학생뿐만 아니라 직장인 수강생도 많아졌다.

직장인들에게 글씨도 하나의 '스펙'이 된 지 오래다.

학원강사로 일하는 조모(31)씨는 "수업 도중 판서할 때는 물론이고 일반 서류를 작성할 때도 악필이라는 지적을 많이 받아 이곳에 오게 됐다"면서 "아직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지만 빨리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종로구의 한 글씨교정학원의 경우 수강생 대다수가 고시생이거나 노후를 대비해 각종 기술사 자격증을 따려고 하는 직장인들이다.

이규택(63) 원장은 "예전에는 콤플렉스를 극복하려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다면 지금은 '먹고살기' 위해서 글씨 교정을 받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먹고살 걱정에 원래 하는 공부나 일에 더해서 글씨 잘 쓰는 기술까지 배우려는 청년들을 보면 가르치면서도 마음이 무겁다"고 한숨을 쉬었다.

글씨교정 전문가들은 어렸을 때 바른 자세와 글씨 쓰기 습관을 들이는 것이 악필을 방지하는 최선책이라고 입을 모았다.

유 대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알파벳과 달리 우리 한글은 좌우 상하 모든 방향으로 쓸 수 있어야 한다"면서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습관을 들여 손에 적당한 힘과 감각을 기르는 것이 악필을 막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hy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