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자 보호하라” > 지난 22일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열린 박람회 행사장에서 이민자들이 ‘이민자 보호’를 외치고 있다. 디모인AP연합뉴스
< “이민자 보호하라” > 지난 22일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열린 박람회 행사장에서 이민자들이 ‘이민자 보호’를 외치고 있다. 디모인AP연합뉴스
< “불법 이민자 추방” >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가 21일 미국 앨라배마주 모빌에서 지지자들의 손을 잡고 있다. 모빌AFP연합뉴스
< “불법 이민자 추방” >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가 21일 미국 앨라배마주 모빌에서 지지자들의 손을 잡고 있다. 모빌AFP연합뉴스
“멕시코 이민자들은 미국에 마약과 범죄를 가져온다. 그들은 성폭행범이다.”(6월16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자들은) 미국을 남북전쟁 이전의 분열 상태로 가져가려 하고 있다.”(8월27일, 힐러리 클린턴)

‘이민자의 나라’ 미국이 이민 문제로 분열하고 있다. 이민의 문호를 확대할 것인가, 불법 이민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등이 핵심 이슈다. 특히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를 노리는 트럼프가 이민자 계층을 비하하는 발언을 쏟아내면서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백인 보수계층은 환호하고, 민주당과 이민자 사회는 분개하고 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이민자 문제가 미국의 최대 갈등 이슈로 부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민자 4200만명 사상 최대

미국의 역사는 이민의 역사다. 건국 초기엔 서유럽과 북유럽인이 이민자의 주류였다. 19세기 중반부터 아일랜드인과 중국인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20세기 들어선 쿠바 등 중남미와 동유럽인으로 범위가 확대됐다.

미국 이민연구센터(CIS)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미국의 이민자 수(미국 이외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 기준)는 약 421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3.3%다. 숫자와 비중 모두 사상 최대다.

미국에서 이민자 문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는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다. 20년 장기 호황 덕분에 이민자에게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살림살이가 팍팍해지자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주범’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어려운 경기 상황에 내년 대통령 선거라는 큰 정치일정이 겹치면서 이민 문제, 특히 불법이민자 처리 문제가 미국의 갈등 이슈로 증폭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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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발언으로 재미 보는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한 부동산 재벌 트럼프는 ‘이민 이슈’를 지지층 확보에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는 6월16일 경선 출마 선언 때 멕시코 이민자 비하 발언을 하며 단숨에 주목받는 정치인 대열에 올랐다. 이후 계속되는 막말로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았지만 그럴수록 지지율은 더 올라갔다. 8월18일 CNN 조사결과 응답자의 44%가 트럼프의 이민정책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6월 조사 때보다 30%포인트 더 올랐다.

트럼프는 불법체류자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렸다. 미국 이민자 약 4210만명 중 1100만명가량은 입국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체류자로 집계된다. 트럼프는 이들을 강제추방해야 할 뿐만 아니라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미국 시민권 취득 목적의 ‘원정 출산’을 막기 위해 미 수정헌법 14조를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조항은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미국으로 귀화한 사람은 미국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CIS는 매년 약 3만6000명의 원정 출산자가 미국으로 입국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민 반대 기저엔 ‘일자리 보호’

트럼프는 불법체류자 추방을 통해 미국적 가치와 법치주의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 언론들은 이에 동조하는 미국 보수층의 속내는 다르다고 분석한다. 가치관의 문제보다 일자리 등 현실적인 이해득실과 더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5월 퓨리서치센터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공화당 유권자의 63%는 이민자들을 직업과 주택, 의료보험 등에서 자신의 경쟁상대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유권자 답변(32%)의 두 배였다. 이민자 증가가 미국인의 일자리 확보 등 각종 경제적 이익에 직접적인 불이익을 주고 있다는 불만이 공화당 지지자 사이에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불법이민자 구제에 나서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불법체류자의 조건부 구제를 내용으로 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일정 조건을 만족하는 550만여명의 불법 체류자에게 추방을 유예해주고 궁극적으로 일자리와 시민권까지 주는 조치다. 공화당은 행정명령을 “이민계층의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인종 구성으로 볼 때도 미국 내 흑인과 히스패닉, 아시아계 등 유색인종 비율은 2060년 56.4%로, 백인계를 추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의 이민자 문제 등에 대한 ‘돌직구 발언’에 보수층이 환호하는 것도 백인 인구비중 감소에 따른 보수층의 위기감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민자 증가는 미국의 행운”

반면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유력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공화당 주자들은 모두 트럼프의 아류작”이라며 “미국을 분열시키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고 비난했다. 공화당 경선 후보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아시아계를 겨냥해 ‘앵커 베이비(원정출산)’라는 표현을 사용해 논란을 불러일으키자 공화당 후보 모두 문제가 있다고 공세를 폈다.

미국 내 이민자 문제가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슈가 되고 있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땐 궁극적으로 큰 행운이자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이 인구 고령화로 힘겨워할 때 미국은 상당 기간 젊은 이민계층의 유입으로 경제에 활력을 얻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