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집단 실패 막으려면 '악마의 변호인' 도입하라
1961년 4월 미국은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혁명정부를 타도하기 위해 쿠바를 침공했다. 공군이 쿠바의 피그스만에 상륙한 뒤 미국의 보급선 두 척은 쿠바 전투기에 의해 침몰하고, 두 척은 도망갔으며, 네 척은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 지원을 받지 못한 침공군은 대부분 사살되거나 생포됐다. 미국은 포로를 석방하는 대가로 쿠바에 5300만달러의 원조를 제공해야 했다. 이 작전의 실패로 쿠바와 소련의 관계는 더 돈독해지고, 미국은 국제적 맹비난에 시달리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피그스만침공이 실패한 직후,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어떻게 내가 그런 침략을 허락할 만큼 어리석었단 말인가”고 한탄했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의 자문단은 유례없이 노련하고 유능한 집단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작전이 실패하리라는 충분한 근거를 확보하고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일부는 개인적인 의구심을 표하기도 했지만 동료들 눈에 유약하다고 낙인 찍힐 것이 두려워 전혀 내색하지도 않았다.

이처럼 많은 조직에서 우수한 두뇌 집단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집단 실패’의 사례가 발생한다. 굴지의 대기업이 아무도 원하지 않는 제품을 출시하거나, 관료들이 방향이 빗나간 규제를 고집하기도 한다.

개인의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을 이야기한 베스트셀러 《넛지》를 쓴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 로스쿨 교수는 신간 《와이저》에서 조직의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에 대해 탐구한다. 저자는 민간이든 공공이든 ‘집단적 논의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는 것이 아닌 ‘집단적 논의 때문에’ 실패하는 조직의 함정을 파헤친다.

저자는 집단 실패의 원인을 비현실적 낭만주의, 폭포효과, 후광효과 등 다양한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는 “집단은 맨 처음 말을 꺼내거나 행동에 나선 사람에게 나머지 구성원들이 무작정 동조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쉽다”고 진단한다. 회의에서 앞서 발언한 세 사람이 동일한 입장을 취하면 네 번째 사람은 이를 부정할 만한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어도 대놓고 반박하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집단은 개인보다 더 극단화되는 경향이 있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 논의를 벌이고 나면 훨씬 더 낙관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식이다. 집단은 또 모든 구성원이 알고 있는 정보만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 공유되지 않은 정보를 포착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소수의 구성원이 가진 비판적이거나 충격적인 정보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집단의 약점을 극복하고 성공으로 이끄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집단 실패의 위험을 낮추는 여러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그는 “리더가 말을 아끼고 다른 구성원이 먼저 이야기하도록 부추기기만 해도 최고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어 “구성원 각자에게 특별한 역할을 지정해 주면 집단에 필요한 완벽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내부의 비현실적 긍정주의에 대항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레드팀’을 운영하면 기존 관행의 취약점을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집단 의사와 상반된 입장을 드러낼 전담자를 공식적으로 지정하는 ‘악마의 변호인’을 도입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집단이 구성원들에게 집단 의사에 반하는 정보라도 주저 없이 이야기하도록 장려하면 집단 실패의 가능성은 줄어든다는 얘기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