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원춘 국장 등도 최근 방영 기록영화에 모습 보여
국정원 "갑자기 숙청해 사진 삭제에 시간 걸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처형한 것으로 알려진 현영철(66) 인민무력부장이 이달 5일부터 12일까지 북한 TV에 매일 등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사실은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5일부터 11일까지 매일 방영한 1시간15분 분량의 기록영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 동지께서 인민군대사업을 현지에서 지도'를 연합뉴스가 13일 분석한 결과 드러난 것이다.

북한이 그동안 주요 간부를 처형하거나 숙청한 뒤 각종 매체에서 이들의 '흔적'을 지우는 행태를 보여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처형 열흘이 넘도록 현영철 부장의 모습이 연속적으로 방송에 등장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조선중앙TV는 지난 5일 이후 매일 김정은 제1위원장을 수행하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의 모습을 여러 차례 방영했다.

기록영화 중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은 동지께서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의 비행장 타격 및 복구훈련을 보시였다'는 장면에서는 군복을 입은 현영철 부장이 김정은 제1위원장을 가까운 거리에서 수행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나온다.

이 장면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공군 비행장 타격과 복구 훈련을 참관했을 때를 촬영한 것이다.

당시 참관 소식은 지난 3월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으나 구체적인 일시와 장소는 밝히지 않았다.

화면 속의 현영철 부장은 지시를 내리는 김정은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수첩에 무언가를 적고 있다.

현영철 부장은 김정은이 화면이 잡힐 때마다 함께 나와 등장 횟수도 여러 차례에 이른다.

이 기록영화는 5일 방송이 첫 방송이었으며, 6일부터 11일까지는 재방송이었다.

국정원이 파악한 것처럼 현영철 부장이 지난달 30일 처형됐다면 5일 첫 방송 전에 거의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이 있는데도 현영철 부장의 모습이 삭제되지 않고 그대로 방영된 것이다.

기록영화뿐 아니라 조선중앙TV가 이달 6일과 8일, 10일, 12일에 방영한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말자'라는 노래의 배경화면에도 현영철이 등장한다.

북한은 그동안 숙청을 당하거나 실각한 간부들의 모습을 기록영화 등 매체에서 편집하거나 삭제해왔다.

해당 간부가 등장하는 화면을 다른 장면으로 대체하거나 자르기, 확대 등을 통해 모습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방식이다.

지난 2012년 해임된 리영호 군 총참모장의 경우 해임 발표 6일 후 매체에서 삭제됐고, 2013년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처형 발표 5일 전 매체에서 모습을 감춰 실각을 예견케 했다.

2010년 3월에는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물어 박남기 전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을 반혁명분자로 몰아 처형하고 나서 기록영화에서 그의 생전 모습을 모두 없앴다.

북한이 숙청한 간부의 모습을 매체에서 비교적 빠르게 '처리'해왔던 전력을 볼 때, 현영철 부장의 모습이 열흘이 넘도록 여전히 목격되고 있는 것은 이례적이다.

국정원도 이 때문에 현영철 부장의 숙청을 완전히 단정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갑자기 숙청돼 사진 삭제나 흔적 지우기에 시간이 걸린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영철 부장과 마찬가지로 마원춘 국방위원회 설계국장과 변인선 군 총참모부 작전국장의 모습도 9일 방영된 기록영화에 여전히 삭제되지 않고 남아 있으며, 한광상 노동당 재정경리부장도 11일 방영 기록영화에 등장하고 있다.

한편, 리영호 해임과 장성택 처형 당시에는 숙청 사실을 세세하게 보도했던 북한 매체들이 현영철 부장 숙청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도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차지연 기자 charg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