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스가 지난달 10일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stable)’에서 ‘긍정적(positive)’으로 상향 조정했다. 곧 국가 신용등급을 올린다는 신호다. 올 들어 신용등급(전망 포함)이 조정된 12개 나라 중 등급이 오른 나라는 한국 인도 포르투갈 헝가리 등 네 나라뿐이다.

분명 기뻐해야 할 일이다. 1997년 말 외환위기 당시를 생각해 보자. 무디스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모르던 한국인들은 풍전등화의 위기 앞에서 국가신용평가단의 일거수일투족을 신경을 써야 했다. 당시 무디스 부사장이던 톰 번의 부인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왠지 모를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말이다. 등급 ‘전망’만 올라도 외채 조달 비용이 크게 줄던 때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반갑지 않은 신용등급 상향조정

그러나 최근 한국의 신용등급 상향은 기쁘기보다 걱정스럽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무디스나 S&P가 등급을 바꾼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두 기관은 한국이 공기업 부채를 줄이고, 건전 재정기조를 유지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그런 이유로 2011년 이후 미국과 중국, 일본 신용등급이 다 떨어져도 한국은 계속 올랐다. 2012년엔 피치, 무디스, S&P 등 세 회사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한꺼번에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한국의 신용등급이 오른 시기는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들이 경쟁적으로 양적 완화에 나서던 때다. 한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뒤 2011년까지 재정 지출을 늘리는 경기부양 정책을 썼지만 그 후론 공기업 부채 감축 등 재정 건전성 정책에 더 무게를 뒀다. 정책금리도 올렸다. 한국은행은 2010년 7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연 2%였던 기준금리를 연 3.25%로 인상했다.

최근 경기상황도 신용등급 상향이 즐겁지 않은 이유다. 무디스는 한국의 대외 부분 건전성이 개선됐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지난달 무역흑자는 84억8000만달러로 사상 최대였다. 37개월째 흑자행진이다.

문제는 내용이다. 수출이 4개월 연속 감소했는데도 무역흑자다. 수출 감소폭보다 수입 감소폭이 더 커서 생긴 일이다. ‘불황형 흑자’다.

흐름 못 타면 성과 내기 어려워

생산과 투자, 소비 등 실물 지표들도 모두 뒷걸음질이다. “이러다 일본보다 더 심한 디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우려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신용평가사들이 1997년 말 외환위기가 터지기 직전까지도 한국에 ‘A’등급을 줬던 것이 떠오른다. 위기를 감지하지 못하고 좋은 신용등급을 선심 쓰듯 주려는 것은 아닌지….

경제는 ‘흐름’이 중요하다. 한국만 동떨어진 정책을 펴긴 힘들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적 완화에 나섰던 미국은 이제 금리인상을 통한 유동성 축소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2011년 말부터 1, 2차 장기대출프로그램(LTRO) 등의 양적 완화 정책을 썼던 유럽연합(EU)에서도 최근 장기 국채금리가 반등하면서 시장이 스스로 출구를 찾아가는 모습이다.

반면 한국은 실물경기가 나빠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기획재정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미국의 금리인상 시기가 다가오지만 한국은 추가 금리인하가 가능하다”며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주요국의 흐름에서 우리만 동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시장에서 나오는 이유다.

박수진 국제부 차장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