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잃었지만 꿈은 포기 못해…약자 살피는 판사 될 것"
김동현 씨(33·사진)는 2012년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이후 몇 개월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극도의 슬픔은 눈물조차 마르게 했다. 부산과학고, KAIST 신소재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2년차 때 의료사고를 당했다. 그날 이후 그는 빛과 어둠을 구분할 수 없게 됐다. 어떤 말도 그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웅크린 채 6개월을 보냈다. ‘내 인생은 끝났구나…’라고 생각했다.

이듬해 1월, 친지의 권유로 경북 안동의 한 사찰을 찾았다. 그곳에서 한 달간 삼천배를 했다. 첫날 10시간이 걸렸다. 부들거리는 다리를 잡고 방에 돌아가 누웠다. 설움이 복받쳤다.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일을 당했을까’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감정의 둑이 ‘툭’ 하고 무너졌다. 그렇게 1주일동안 밤마다 울었다. 10시간이 걸리던 삼천배가 마지막 날에는 다섯 시간 남짓 걸리게 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는 ‘다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눈은 잃었지만 꿈까지 잃은 건 아니다’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1년을 휴학한 김씨는 다시 학교에 복학했다. 결심은 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책을 볼 수 없으니 일일이 컴퓨터 파일로 만들어서 음성변환 프로그램을 이용해 들으며 공부했어요. 책 한 권을 음성책으로 바꾸는 데 평균 2~5개월이 걸립니다. 저는 다른 친구들처럼 다양하게 책을 볼 수 없어서 10번쯤 들었어요. 듣는 게 읽는 것보다 공부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기억에는 조금 더 잘 남더군요.”

로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장애인의 날인 20일부터 그는 로스쿨생이 선망하는 재판연구원(로클럭)이 된다. 서울고등법원은 17일 김씨를 포함한 42명을 재판연구원으로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예비법관’으로 불리는 로클럭은 2년간 각급 법원에서 재판과 관련된 보고서를 작성하고 법리·판례 등을 연구한다. 임시직이지만 법관이 되는 데 유리하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 지난 17일 서울 대신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씨는 “큰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로클럭으로 주어진 일을 충실히 완수함으로써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겐 세상 밖으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분들이 있다. 시각장애인 선배들이다. “남형두 대학원 지도교수의 소개로 김정호 엑스비전테크놀로지 이사, 최영 서울북부지방법원 판사, 김영일 조선대 특수교육과 교수를 만나게 됐습니다. 열 마디 말보다 그분들의 행동 하나가 더 큰 희망이 됐습니다. 앞이 보이다 안 보이니까 작은 것 하나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벽을 모두 다 깨주셨어요. 그분들은 여행, 운동 등 대부분의 일상생활을 혼자서 하시거든요.”

그는 약자를 살피는 판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헌법 11조1항에 보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나오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장애인이 되고 나니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에 관심을 두게 되더군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인권적 감수성이 풍부한 판사가 되고 싶습니다.”

글/사진=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