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과개미·페이퍼코리아·맥키스 컴퍼니…학습지·제지·소주업체도 부동산 개발 뛰어들었다
40년 가까이 출판·학습지 사업을 펼쳐온 이형수 노벨과개미 회장은 3~4년 전부터 출판 사업이 계속 성장할 수 있을지 고민에 빠졌다. 국내 독서량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지만 출판사는 계속 생겨나 출혈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이 회장이 신(新)성장 사업으로 선택한 분야는 부동산 개발업이다. 인생 2막을 시작한 친구들의 오피스텔을 들렀던 게 디벨로퍼(개발사업자) 겸업의 계기가 됐다. 욕조는 물론 붙박이장도 제대로 없고 창문은 너무 작아 답답했다. 아파트와 같은 오피스텔을 지어보자고 결심한 배경이다.

광교 엘포트 아이파크
광교 엘포트 아이파크
이렇게 해서 나온 게 지난달 수원 광교신도시에서 분양된 1750실 규모의 ‘엘포트 아이파크’ 오피스텔이다. 이 회장은 2012년 6월 땅을 구입한 뒤 건설사와 개발업체 관계자들을 일일이 만나 개발업 공부에 몰두했다. 이 오피스텔은 분양 초기임에도 계약률이 80%를 웃돌고 있다.

이 회장은 “학습지 사업을 계속하면서 개발업을 확대할 것”이라며 “위례신도시와 경기 성남, 용인 등에 이미 상당량의 토지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부동산 개발시장에 건설 이외 분야 업체가 잇따라 뛰어들고 있다.

경기 안양시 평촌에 있는 오성제지는 지난해 말 관양동에서 지식산업센터인 ‘대우 평촌 오비즈타워’를 준공했다. 지상 35층, 연면적 12만4171㎡ 규모다. 이 회사는 50년간 유지해온 폐지 재활용 사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부동산 개발·임대업으로 업종을 전환한 경우다.

주력 업종이 사라진 만큼 내부적으로 사명 변경도 검토 중이다. 이 사업 프로젝트매니저를 맡은 피데스개발 관계자는 “주거래은행 지점장이 개발을 권유해 공장 부지를 지식산업센터로 바꾸게 됐다”며 “600억원 선인 공장 부지를 개발해 부가가치를 크게 높였다”고 설명했다.

대전 소주 브랜드 선양을 보유한 맥키스컴퍼니(회장 조웅래)는 경기 시흥시 대야동에서 3000가구 규모의 주상복합 단지 개발을 진행 중이다. 시공사를 정하기 위해 대형 건설사와 접촉하고 있다. 제지업체인 페이퍼코리아는 최근 전북 군산 조촌동 공장을 6000여가구 규모의 주거단지로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군산 비응도동에 공장 이전 부지를 확보한 데 이어 기존 부지에 대한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진행하고 있다. 본업은 유지하지만 낡은 공장 부지를 직접 개발하는 디벨로퍼도 겸한다는 계획이다.

녹십자홀딩스(회장 허일섭)도 최근 경기 용인시 기흥역세권에서 아파트 개발 사업을 하기 위해 사업 목적에 부동산 개발업을 추가했다. 포스코건설과 손잡고 올 하반기에 1389가구의 대단지를 공급할 예정이다.

제조업체를 매각하고 디벨로퍼로 나선 사례도 있다. 의류 브랜드 ‘타임’ ‘시스템’ 등으로 유명한 한섬의 창업자인 정재봉 회장은 3년 전 회사를 현대백화점그룹에 매각한 뒤 골프장 업체인 사우스케이프를 설립했다. 사우스케이프는 경남 남해에 있는 사우스케이프오너클럽을 운영 중이다.

이처럼 비(非)건설사가 부동산 개발업에 잇따라 뛰어들고 있는 것은 새 수익 사업을 확보하는 한편 기존 보유 토지의 부가가치를 높이려는 의도다.

이경수 한국부동산개발협회 사무국장은 “국내 제조업이 장기 불황을 겪으면서 사업 타개책의 하나로 보유 토지를 직접 개발하려는 업체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