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속 옌볜 거리' 가리봉동, 차이나타운 조성 갈등 증폭
지난 20일 오후 서울 가리봉동에 있는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3번 출구에서 가산디지털단지 방향으로 500m가량 이어진 길에는 중국어로 쓰인 간판이 즐비했다. 거리엔 중국 대표 향신료인 쯔란 냄새가 풍겼다. 곳곳에서 중국어나 옌볜 사투리가 섞인 한국말이 들려와 표준말을 쓰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이곳은 4만여명의 조선족이 거주하는 서울 최대 중국인 밀집촌이다. ‘서울 속 옌벤 거리’로 불리는 이 일대를 서울의 첫 차이나타운으로 조성하려는 서울시와 관할구청인 구로구의 계획이 지역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표류하고 있다.

가리봉동은 1970년대 국내 수출산업단지 1호로 조성된 옛 구로공단의 배후 주거지다. 하지만 1990년대 공단이 점차 쇠락하면서 근로자들이 떠나자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중국 동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곳은 현재 서울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2000년대 초반 개발이 무산된 이후 체계적인 건물 정비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와 구로구는 지난해 9월 가리봉동에 차이나타운을 조성하는 내용 등을 담은 가리봉동 도시재생계획을 내놨다. 지역 특색을 살려 가리봉동을 인천의 차이나타운 같은 관광 명소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구는 가리봉동 거리를 ‘차이나타운’으로 지정하고 차이나타운 상징 조형물을 설치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조선족 관련 단체와 손잡고 문화행사를 열어 가리봉동에 관광객을 불러들이겠다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요우커(遊客)들이 많이 찾는 가산 아울렛 단지가 걸어서 10분 정도여서 관광지로 적합하다는 게 구의 설명이다.

하지만 구의 이 같은 계획은 시작도 하기 전에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가리봉동에 오래 산 한국인 주민들은 차이나타운 조성에 부정적이다. 가리봉동에 사는 김모씨(72)는 “15년 전에 이곳에 이사 왔을 때만 해도 길을 지나는 사람 대부분이 한국인이었지만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차이나타운이 조성돼 중국 관광객까지 몰려들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곳 가서 살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는 서울시와 함께 지역 주민을 계속 설득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반발이 워낙 거세 어려움이 예상된다.

강경민/나수지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