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복지 축소냐, 증세냐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뀐 올해 연말정산이 ‘꼼수 증세’ 논란을 초래했다. 인천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아동학대 사건을 낳은 원인으로는 무상보육이 꼽히고 있다. 최근의 두 사태는 ‘증세 없는 복지 확대’를 내건 박근혜 정부가 자초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무상복지 비용을 비과세·감면 축소와 지하경제 양성화 등으로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복지예산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올해 책정된 복지예산은 115조원을 넘어섰다. 2006년 56조원에서 9년 만에 두 배로 불어났다. 정부가 약속한 기초연금, 무상보육, 무상급식 등 이른바 ‘무상복지 3종 세트’ 예산이 가파르게 늘기 때문이다. 3대 무상복지 예산은 지난해 21조8110억원에서 2017년 29조8370억원으로 3년 새 40%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경기 침체가 이어져 세수 부족은 심화되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4년째 3%대를 맴돌면서 세수 실적이 예상치를 밑돌고 있다. 지난해 세수 부족액은 11조1000억원으로 사상 처음 10조원을 돌파했다. 이런 가운데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선 결국 증세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과, 재정 여건에 맞게 무차별 복지에서 선별적인 복지로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혼재하고 있다. 정부가 솔직하게 국민의 동의를 구한 뒤 증세를 해야 한다는 의견과 포퓰리즘의 산물인 무상복지를 대폭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복지 축소 / “연말정산 파동은 복지 광풍 탓…선별적 복지로 전환만이 해법”

‘부자증세’로 재원 충당 주장은 환상에 불과


[맞짱 토론] 복지 축소냐, 증세냐
정부와 정치권이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복지재원 조달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무책임하게 도입한 기초연금, 무상보육,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등 ‘복지 광풍’은 결국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불안으로 돌아왔다. 연말정산 파동을 계기로 비로소 복지는 공짜가 아니라는 점을 국민이 알게 되면서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당황한 정부와 정치권은 책임 회피에 정신이 없다. 그러나 국민도 ‘복지를 늘려도 나의 부담은 없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정치권의 선동에 무언의 동의를 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정부가 제시한 복지재원 조달방법인 비과세·감면 정비, 지하경제 양성화, 세출 구조조정은 전혀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하루하루 먹고살아가기 바쁜 국민은 머리의 개념이 아닌 피부의 체감을 통해 증세를 판단한다. 세율 인상과 세목 신설이 없어도 비과세·감면 정비에 따른 세금 증가를 증세로 생각한다. 연말정산 파동은 정부가 이 점을 간과해 초래됐다.

또 지하경제 양성화 없는 증세는 ‘유리지갑을 가진 월급쟁이만 봉’이라는 피해의식을 가져오고, 획기적인 세출 구조조정 없는 증세는 흥청망청한 국가 운영에 왜 세금을 내야 하는가 하는 회의를 느끼게 한다.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지하경제 양성화와 세출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는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증세뿐 아니라 증세 논의 자체가 불가능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아직도 정치권 일부에서 현재의 복지수준 또는 이보다 높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 재원 조달방법으로 ‘부자 증세’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주장은 부자는 ‘마르지 않는 부(富)의 샘’을 갖고 있다고 믿고 싶은 ‘신화’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생존의 기로에 있는 많은 기업과 지갑을 꽁꽁 닫아버린 부자들은 그 신화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증명하고 있다. 이 신화가 현실화하려면 1970~1980년대처럼 눈부신 경제 성장이 이뤄져야 한다. 저성장이 이어지는 마당에 부자증세가 복지재원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기대는 환상에 불과하다.

정부의 복지재원 조달방법과 부자증세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보편적 무상복지의 재원 조달책이 아니다. 복지에 대한 갈증과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보편적 복지에서 현재 동원이 가능한 복지재원 범위 내의 선별적 복지로 전환해 복지지출을 축소하는 것이다.
[맞짱 토론] 복지 축소냐, 증세냐
복지로 삶의 질에 큰 변화가 없는 국민에게 복지혜택은 더 이상 복지가 아니다. 삶을 포기할 정도의 생활고를 겪고 있는 국민에게 주는 복지혜택이 삶의 질을 크게 바꾸는 진정한 복지다. 복지혜택이 절실한 국민에게 우선순위를 두고 한정된 복지재원을 배분해 복지증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게 선별적 복지다. 물론 복지재원이 늘어나 복지 적용 대상을 확대한다면 궁극적으로 보편적 복지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복지증진에는 기업과 기업인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업과 기업인은 복지의 주요 재원인 법인세와 소득세를 내고, 최고의 복지인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경제 성장의 주축인 기업이 성장하지 않고서는 복지의 실현도 불가능하다.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 성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고용시장의 모순과 정부규제를 제거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야말로 복지를 확대하는 지름길임을 알아야 한다.

증세 불가피 / “복지 선진국 가려면 증세 불가피…소득세·자본이득세 등 강화해야”

국민들 증세 거부 아닌 불투명 세제개편에 ‘불만’

[맞짱 토론] 복지 축소냐, 증세냐
올해 연말정산에서 근로소득자의 환급액이 출산·입양공제 폐지, 연금보험 공제율 축소,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의 전환 등으로 인해 줄었다. 환급액 감소에 근로소득자들이 크게 반발하면서 공제제도의 소급 변경이 추진되는 등 큰 혼란을 겪고 있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안 발표와 주민세·자동차세 인상안도 보류되거나 철회됐다.

연말정산 파동을 계기로 국민이 복지확대를 위한 증세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는 해석하지 않는다. 연말정산 논란은 정부가 세제개편 내용과 취지를 국민에게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고, 국세청이 관련 자료나 통계에 대해 지나치게 폐쇄적이었던 데 원인이 있다.

한국도 복지 선진국이 될 수 있고,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확대되고 있는 노인장기요양보험, 보육 지원 등은 국민들의 복지 체감도를 높여 가고 있다. 하지만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선 증세가 필수다. 복지 증세를 한다면 가장 먼저 개인소득세를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모든 복지 선진국에서는 개인소득세 비중과 누진성이 매우 높다.

한국의 경우 각종 비과세 감면이 많고, 면세자 비율도 높다. 반면 최고세율과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기준소득도 다소 높은 편이다.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을 40%로 올리되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기준소득을 다시 낮추면서 동시에 하나의 패키지로 비과세 감면을 축소해 중산층의 세 부담을 높이는 안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이 같은 개인소득세 세율체계 개편과 함께 자본이득세를 강화할 필요도 있다. 주식 거래에 부과되는 자본이득세는 현재 대주주에게만 적용되고 있다. 이를 일반주주에게 확대 적용하면 투기적인 주식 투자도 줄여 나갈 수 있다. 자본이득세 부과는 배당을 유도한다는 추가적인 이점도 있다. 종교인 과세, 미술품 과세 등 새로운 세원도 발굴해야 한다.

하지만 소득세 강화로 확보하는 추가 세수는 현재 필요로 하는 복지 재정수요를 충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법인이 부담하는 공적연금, 건강보험, 실업보험 등에 대한 사회보험료를 인상하는 것도 좋은 재원 마련 대책이 될 수 있다. 법인세율 자체를 인상하는 것보다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맞짱 토론] 복지 축소냐, 증세냐
소기업과 영세기업에 대해서는 현행 사회보험료 지원 프로그램인 두루누리사업을 확대해 사회보험이 적용되는 보다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도록 해야 한다. 자본이 국경을 활발히 넘나드는 무한경쟁시대에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는 법인세율을 올리기가 매우 어렵다. 자칫 법인세율 인상이 외국인 자금 유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인세율과 부가가치세율 인상은 복지지출 효과가 높게 나타나고, 국민의 복지 체감도가 크게 높아진 이후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추진돼야 한다.

복지재원을 확충하고 복지제도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높이려면 지속적으로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우선 예산이 낭비되는 유사·중복사업들을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보편적 복지가 아닌 지급 능력에 따라 부담하고 필요에 따라 혜택을 받는 맞춤형 복지로의 전환도 고려해야 한다. 아동과 노인에 대한 돌봄복지를 확대해 노인 빈곤 문제와 저출산 문제를 보다 적극 해결하는 방향으로 복지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과제다.

조진형/고은이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