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코앞으로 다가온 12월25일…상여금도 줄었는데 고급 식당이 웬 말…올 성탄절은 알뜰한 '방콕'이 대세
국내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 대리(33)는 이번 크리스마스에 아내를 위해 특별한 요리를 해줄 생각이다. 결혼 2년차인 그는 지난해 시내 한복판에서 보내는 데이트 코스를 짰다가 아내와 크게 싸움을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한 맛집은 평소보다 가격이 1.5배 높은 메뉴판을 내놓았고, 그마저도 손님이 밀려드는 통에 서비스 또한 만족스럽지 않았다. 인파에 이리저리 쓸려 다니다 결국 신경이 예민해져 서로 싸우고 말았다. 김 대리는 그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올해는 집안에서 우아하게 보내기로 했다. 가장 자신 있는 요리인 돼지고기볶음을 만들고 아내가 좋아하는 와인을 곁들여 분위기를 내기로 했다. “상여금도 줄었고요, 밖에 나가봤자 고생만 해요. 집에서 보내는 게 최곱니다.”

한파만큼이나 싸늘한 경제 상황이 크리스마스 트렌드까지 바꿔 놓고 있다. 떠들썩한 파티나 대외행사, 공연관람이 줄고 김 대리처럼 가족과 함께 조촐히 집에서 보내겠다는 알뜰족이 늘고 있다. 물론 미혼 김과장 이대리들에겐 크리스마스가 새로운 인연도 만들 수 있고, 나름의 추억도 쌓을 수 있는, 포기할 수 없는 빅 이벤트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특별한 계획과 이벤트를 만드느라 부지런히 ‘헤쳐모여’ 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이들 미혼 사이에서도 ‘무리하지는 말자’는 게 대세. 김과장 이대리들의 크리스마스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요즘 크리스마스 트렌드는 ‘경제 크리스마스’

시중 A은행에서 일하는 박모 계장은 올해 ‘방콕’ 크리스마스를 계획 중이다. 박 계장은 남편도 은행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부족한 형편은 아니다. 그러나 청약 당첨된 아파트 때문에 목돈이 나가 밖에서 크리스마스를 즐기기엔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방콕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크리스마스트리에 반짝반짝 전구를 달아 놓아 집안 분위기를 살렸고,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마트에서 한 마리에 2만원 정도 하는 랍스터를 사다 그럴싸하게 요리를 해 볼 생각이다.

출판사에 근무하는 김모씨는 3주 전에 서울 이태원에 있는 레지던스를 예약했다. 애인이 없는 친구들과 계획한 파자마 파티를 위해서다. 이 파티는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연례행사다. 이태원의 맛집에서 세계 각국의 맛난 음식을 공수하고 거기에 각자 집에서 가져온 와인과 맥주를 곁들여 마시며 논다. 1만원 안에서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의 선물을 준비해 서로 교환한다. 인기 있는 TV프로그램을 함께 보며 수다를 떨고, 범인잡기 게임 같은 건전한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저희도 처음엔 밖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도 했어요. 그런데 돈은 돈대로 쓰고 날도 춥고 피곤한 거예요. 그래서 이런 파자마 파티를 열게 됐죠.”

◆솔로 부대의 최대 권리는 ‘자유’

짝이 있는 미혼 김과장 이대리들에게 크리스마스는 풀기 힘든 숙제 같다. 상대를 위해 기억에 남는 이벤트를 마련해야 하고 근무 상황과 주머니 사정까지 고려해야 한다. 경기 수원에서 서울로 회사를 다니는 김모 대리는 올해 크리스마스이브엔 유연 근무제를 활용할 예정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 퇴근길엔 경부고속도로에서 세 시간을 보냈다. 퇴근시간 무렵 쏟아져 나온 통근버스와 자가용 탓에 고속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김 대리는 올해 새로 생긴 여자친구를 위해 없는 돈을 쪼개 유명 가수의 콘서트 관람권까지 마련했다. 작년같이 도로에 갇히면 끝이다. 그래서 ‘유연근무제’다. 오전 6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할 계획이다. 하루 정도 상사와 동료들의 눈칫밥은 각오하고 있다.

솔로들은 이런 걱정이 없다. 기혼자나 커플들에게 없는 자유가 있다. 잡지회사에 다니는 유모 대리는 크리스마스가 낀 오는 27~28일 1박2일 일정으로 강원도로 여행을 갈 계획이다. 동일 업종에서 근무하는 미혼 동료들과 짠 ‘급’ 겨울여행이다. 남자 친구가 없다고 그대로 집과 회사만을 오가기는 서글프다는 판단에서 급하게 마련했다. 비슷한 생각을 공유한 멤버도 서둘러 모았다. 짧은 시간 안에 식사 메뉴, 저녁 게임 종목, 동선까지 완벽하게 짰다.

◆크리스마스가 뭔가요…휴일에도 일하는 사람들

한 협회에서 회장비서로 일하는 A씨는 크리스마스 계획이 없다. 상사인 협회장의 일정이 25일까지 빡빡하게 짜여 있기 때문이다. 상사를 지근에서 수행해야 하는 그의 일상은 협회장의 일정에 따라 달라진다. 크리스마스이브는 물론 당일에도 저녁 송년회까지 꼬박 따라다녀야 한다. 지난 2년간 A씨가 오전 5시30분을 넘어 집을 나선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기독교 신자인 A씨의 아내와 아이들은 올해도 교회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로 했다. 그는 비서 생활이 끝나고 부서 이동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해외에서 나홀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이들도 있다. 유통업체에서 해외 영업을 담당하는 정모 부장은 24일 싱가포르로 출국할 예정이다. 연간 실적을 점검하기 위해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삼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을 3주간 돌아볼 예정이다. 그의 크리스마스 출장은 해외 영업 파트에서 일하기 시작한 2008년부터 올해로 7년째. 처음에는 가족들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지만 이제는 ‘연말에 없는 사람’ 취급을 받고 있다. 정 부장은 “처음엔 해외에서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내기 싫어 사비를 들여 가족을 출장지로 부르곤 했는데 몇 번 해보니 그것도 부담이 되더라고요. 그냥 일이라고 생각하니 요즘엔 마음이 좀 편해졌습니다”고 말했다.

김인선/안정락/김은정/강현우/황정수/강경민/김동현/김대훈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