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노인정치 시대
1984년 73세의 나이로 재선에 도전한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TV 토론회에서 민주당 월터 먼데일 후보로부터 “나이가 너무 많지 않으냐”는 공격을 받았다. 레이건은 영화배우 출신답게 부드러운 얼굴로 “나는 먼데일 후보의 젊음과 무경험을 부당하게 이용하지 않겠다”고 응수해 점수를 땄다. 재선에 성공했지만 레이건은 이미 고령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엊그제 튀니지 대통령에 당선된 베지 카이드 에셉시 후보는 88세다. 임기 5년을 마치면 93세로 은퇴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다. 시몬 페레스는 84세였던 2007년에 이스라엘 대통령에 취임해 올해 91세로 퇴임했다. 노인정치(gerontocracy) 시대가 다시 열리는 셈이다.

노인정치가 새로운 용어는 아니다. 옛 소련은 1980년대 말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기 전까지 20여년 넘게 노인정치 시대를 이어갔다. 브레즈네프와 안드로포프 시절 권력 주위엔 70대 정치국원이 가득했다. 고르비 시대는 노인정치의 종언이었다. 중국은 전직 국가 지도자들이 퇴임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로정치’의 전통이 있어왔다. 사실상 노인정치였다. 엊그제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의 비서실장이던 링지화 통일전선정책부장의 낙마를 ‘중국 원로정치의 종언’으로 해석하는 보도가 많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옛 소련과 중국의 노인정치가 혁명 1세대들의 권력 과점적 성격이 강했던 반면 최근의 노인정치는 평균수명이 늘면서 일어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100세 이상 인구가 서울에만 4522명, 전국으로 따지면 1만4592명이나 된다. 100세 이상이 평균수명이 되는 가위 ‘호모 헌드레드(Homo 100)’ 시대다. 성경에 나온 대로 ‘그들의 날은 120년’(창세기 6장3절)이 되는 모양이다.

정치 고령화가 이 추세에서 예외일 수 없다. 국왕 가운데 최고령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88)다. 70년째 왕위에 있는 태국의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은 87세다. 종신인 국왕은 평균수명이 늘면 최고령 재임기록도 계속 경신될 가능성이 높다. 카리스마 있는 정치 지도자들 중에는 장수한 이들이 많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1878~1965)은 81세에 총리에서 퇴임했고, 샤를 드골(1890~1970)은 79세까지 프랑스 대통령을 지냈다. 옛 서독 초대총리를 지낸 콘라드 아데나워는 87세인 1963년까지 일했다. 중국의 덩샤오핑(1904~1997)은 국가주석에서 물러날 때 85세였다. 하기야 나라와 민족을 잘 이끈다면야 나이가 무슨 문제가 있으랴.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