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 내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가격이 배럴당 20달러로 떨어지더라도 감산에 나서지 않겠다고 밝혔다. 미국 등 비(非)OPEC 회원국에 더 이상 시장을 내주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원유시장을 둘러싼 OPEC과 미국 등의 패권 다툼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유가의 추가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사우디 "유가 20달러 돼도 減産 안한다"
○사우디, “점유율 포기 안 할 것”

23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알리 알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은 석유 전문지인 중동이코노믹서베이(MEES)와의 인터뷰에서 “OPEC은 유가가 얼마가 되든 생산량을 줄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알나이미 장관은 “사우디가 감산에 나서면 유가는 회복되겠지만 이로 인해 러시아, 브라질, 미국 셰일원유 업계가 사우디의 시장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해 시장점유율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전문가들은 “1970년대 이후 생산량 조절을 통해 유가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던 OPEC의 전략이 시장 방어로 전면 수정됐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중동지역보다 생산 원가가 높은 캐나다 오일샌드, 미국 셰일원유, 브라질과 북해 심해유전 지역 등을 제압하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알나이미 장관의 발언이 전해지면서 22일(현지시간) 국제유가는 또다시 큰 폭으로 하락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내년 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WTI)는 전날보다 3.3% 하락한 배럴당 55.26달러에 마감했다. 북해산 브렌트유도 이날 한때 5년6개월 만의 최저치인 59.84달러까지 떨어졌다.

○IMF, “유가 하락 최대 수혜는 중국”

국제통화기금(IMF)도 이날 낸 보고서에서 사우디가 기존 전략을 수정해 감산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미국 등 비OPEC 회원국의 급격한 생산 위축으로 가격이 급반등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올리비에 블랑샤르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라바 아레즈키 원자재 리서치팀장이 작성한 보고서는 최근 유가 급락의 원인으로 공급 확대를 꼽았지만 미국의 셰일원유보다는 리비아의 생산 재개와 이라크 공급 확대를 꼽았다.

보고서는 현재 배럴당 55달러의 가격이 유지되더라도 내년 원유 생산 감소는 4%에 불과할 것이라며 2019년까지 유가는 배럴당 평균 73달러 선까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IMF는 최근 유가 하락이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최대 0.7%포인트 높이는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가 하락의 최대 수혜국으로는 중국을 꼽았다. 내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유가 하락 영향으로 0.4~0.7%포인트 높아져 7.1%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