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글로벌 행사가 된 '블랙프라이데이'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지난 28일 영국 맨체스터의 테스코 매장에서는 전시 중인 TV 박스가 무너지면서 한 여성이 밑에 깔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밤 12시를 기해 시작된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에 쇼핑객들이 몰리면서 발생한 불상사였다. 영국 대도시 곳곳에서는 수백명의 시민들이 먼저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점원들의 제지를 뿌리치고 쇼핑센터 정문 유리를 부수는 일까지 벌어졌다.

지난주 외신엔 미국에서 시작된 블랙프라이데이가 완전한 글로벌 행사가 됐다는 것을 알리는 각종 사건·사고 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브라질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웬만한 국가의 유통점들은 정가의 절반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쇼핑객을 유인했다.

본고장인 미국에서 지켜본 블랙프라이데이의 경제 효과는 부러울 따름이다. 11월 마지막 주 목요일인 추수감사절부터 연휴가 끝나는 일요일까지 쇼핑에 나서는 인원만 1억4000만명에 이른다. 쇼핑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추수감사절 당일 오후 6~8시 사이에는 미국 전역에서 1분에 1800대의 TV가 팔렸다고 한다. 임시직이긴 하지만 물건을 배송하고, 손님을 안내하기 위한 일자리도 150만개가 생긴다. 시간당 20달러를 받고 줄을 대신 서주는 아르바이트도 성행한다. 그렇지만 올해 블랙프라이데이의 가장 큰 특징은 전 세계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세일즈 경쟁이 본격 시작됐다는 점이다. 한국의 네티즌도 밤을 새워 미국 백화점의 인터넷사이트에 접속해 직접 구매에 나섰다. 국내 백화점과 대형마트, 온라인쇼핑몰도 직구족을 잡기 위해 블랙프라이데이를 본뜬 파격 할인행사를 벌였다.

블랙프라이데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해외 제품을 선호하는 또 하나의 사대주의 소비문화가 탄생했다”고 비판하지만 소비자 선택의 확장이라는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삼성전자 미주법인 관계자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수출한 제품을 다시 한국 소비자들이 온라인으로 사가는 일이 생기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올해 블랙프라이데이는 미국의 가격파괴 경쟁이 내수와 수출 구분을 무너뜨리면서 국경 없는 ‘소비전쟁’으로 확전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심기 뉴욕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