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금속노조 해고노동자들이 경주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 본사 정문 앞 바닥에 낙서를 하고 있다.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제공
지난 9월 금속노조 해고노동자들이 경주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 본사 정문 앞 바닥에 낙서를 하고 있다.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제공
2011년부터 연간 400억원 이상의 흑자를 내온 경주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이하 발레오)가 금속노조의 연일 계속되는 시위와 소송에 휘말려 존폐의 갈림길에 섰다.

2001년 금속노조에 가입한 뒤 해마다 파업으로 어려움을 겪다 2010년 직장폐쇄까지 경험했던 발레오는 금속노조가 떠난 뒤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금속노조가 떠난 뒤 설립된 새 노조는 ‘조합원 탈퇴는 지회장, 지부장, 위원장의 결재를 거쳐야 한다’는 금속노조의 규약을 어겨 무효”라는 법원 판결로 상황이 급반전됐다. 해고 근로자 29명이 공장으로 돌아오면서 연일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강기봉 사장(55)은 지난 25일 기자와 만나 “지난해 7월부터 해고 근로자들이 공장에서 매일 확성기 시위를 벌여 업무가 마비되는 상황에서 다시 금속노조에 공장을 내주게 되면 공장 철수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경주 공장, 시위에 업무차질

25일 오전 공장 본관으로 들어서는 순간, 공장은 소음으로 가득했다. 지난해 7월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으로부터 노조활동 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져 4년여 만에 공장으로 돌아온 해고 근로자들의 시위 때문이다. 회사 측은 “금속노조 산하 발레오만도지회 해고 노조원들이 하루 3시간 이상 확성기로 시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강 사장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회사 정문은 스프레이로 강 사장을 비난하는 낙서가 적혀있고 인근 공단 운동장은 노조 텐트와 임시건물로 뒤덮여 있었다.

강 사장은 “직원들이 정신적 장애를 호소해도 법원은 소명자료가 부족하다며 업무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허탈해 했다. 그는 “해고자들이 소음측정기를 옆에 두고 법적 기준치에 맞춰가며 방송을 할 때는 두렵기까지 했다”며 “지난해 서울에서 있었던 큰딸 결혼식에 떼를 지어 몰려와 시위를 벌였을 때도 참았지만 생산공장이 이렇게 짓밟히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각계에 눈물로 호소해도 노조 떼법이 두려운지 등을 돌리고 있다”고 한숨을 지었다. 이에 대해 해고 근로자 대표인 정연재 전 지회장(45)은 “강 사장이 금속노조를 인정하고 경영상 잘못을 시인하면 갈등은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맞섰다.

◆금속노조 ‘결재’ 없이 탈퇴못해

발레오는 프랑스 발레오그룹이 1999년 만도기계 경주 공장을 인수해 설립한 직원 800명 규모의 회사다. 직장폐쇄 사태를 계기로 노조원들은 2010년 6월 전체 조합원 601명 가운데 550명이 참석한 총회를 열고 97.5%(536명)의 찬성으로 금속노조 산하 발레오지회 탈퇴를 결정하고 발레오 노조란 새 기업노조를 만들었다. 2009년 3000억원 안팎이던 매출이 지난해엔 5250억원으로 늘었다. 직원들은 해마다 평균 1000만원이 넘는 성과급도 받고 있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로 상황이 악화됐다. 법원(서울중앙지법, 서울고법)은 발레오 노조의 금속노조 탈퇴 당시 단체협약권은 금속노조에 있었고 금속노조 규약상에도 조합원 탈퇴는 위원장 등의 결재를 거쳐야 하도록 규정돼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사실상 금속노조 위원장의 ‘결재’가 없는 한 탈퇴가 불가능해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원이 노동 현실을 무시한 채 금속노조 규정을 형식적으로만 해석하는 바람에 산별 노조가 기업별 노조로 전환하는 길을 사실상 봉쇄했다”고 지적했다. 정홍섭 노조위원장은 “대법원에서 패소하면 금속노조에 맞서 새 노조가 회사와 한 합의들이 전부 무효가 돼 발레오 공장은 극도의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정부는 손톱밑 가시만 얘기하지 말고 협력사를 포함해 2500명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금속노조로부터 자유롭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경주=하인식/김덕용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