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공동 롯데갤러리를 찾은 관람객이 미술과 문학의 융합을 시도한 ‘이청준 김선두의 고향 읽기’전에 출품된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 롯데갤러리 제공
서울 소공동 롯데갤러리를 찾은 관람객이 미술과 문학의 융합을 시도한 ‘이청준 김선두의 고향 읽기’전에 출품된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 롯데갤러리 제공
서울 소공동 롯데갤러리 전시장. 이곳에 들어서면 한국화가 김선두 씨가 소설가 이청준 씨의 작품 ‘서편제’ ‘남도사람’ 등에 나오는 고향을 소재로 그린 작품들이 관람객을 반긴다. 그림들은 곰삭은 고향에 대한 감성을 건드려 문학적 상상력을 더해준다. 미술과 문학의 경계를 섬세하게 아우른 이 전시회는 ‘이청준 김선두의 고향 읽기’라는 제목으로 오는 28일까지 이어진다.

미술이 문학 등 다른 장르와 융합된 ‘하이브리드 아트(hybrid art)’가 올가을 화단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하이브리드 아트는 현대인의 욕망과 정서를 건축과 생활과학, 심리학, 대중문화, 첨단 기술, 패션, 영화 요소 등을 반영해 회화, 조각, 영상, 설치미술로 표현하는 작업이다. 미술에 다양한 인문·자연과학적 요소를 접목해 부가가치 높은 창작물로 탄생시킬 수 있어 주목받고 있다.

◆미술의 이종교배…전시회 줄이어

성남아트센터의 ‘현대미술 런웨이를 걷다’전.
성남아트센터의 ‘현대미술 런웨이를 걷다’전.
경기 분당 성남아트센터는 미술과 패션을 융합한 ‘현대미술, 런웨이를 걷다’전(28일까지)을 기획했다. 현대미술과 패션의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현대미술 작가 11명과 이상봉 등 패션 디자이너 7명이 참여해 미술과 패션이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고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코리아나미술관은 오는 11월15일까지 신체를 매개로 한 퍼포먼스와 드로잉, 음악, 연극, 영화, 역사 등의 관계를 풀어내 영상으로 내보이는 기획전 ‘코드 액트’를 연다. 조안 조나스, 윌리엄 켄트리지, 캐서린 설리번, 욘 복 등 국내외 작가 10여명이 참여했다.

인간 두뇌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미술로 보여주는 전시회도 등장했다. 대전시립미술관은 KAIST와 공동으로 11월22일 미술과 과학의 융복합 기획전 ‘더 브레인’을 연다. 김기철, 김주연, 앤드루 카미 등 국내외 작가 35명이 인간의 두뇌를 시각적 측면에서 고찰한 회화, 영상, 설치 작품 40여점을 선보인다.

첨단과학과 수학도 미술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미디어아티스트 조이수를 비롯해 리경, 박재영, 김윤철, 백정기를 초대해 예술과 과학기술의 융복합을 실험하는 ‘초자연’전(내년 1월20일까지)과 수학을 소재로 한 기획전 ‘매트릭스, 수학-순수에의 동경과 심연’전(내년 1월11일까지)을 동시에 열고 있다. 전쟁과 미술의 관계를 명쾌하게 보여주는 전시회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도 오는 28일까지 강원 철원 일대 비무장 지대 인근에서 연다.

◆터렐, 에민 등 하이브리드 작가 인기

다른 영역을 적극적으로 응용하는 이들 예술가의 가장 큰 고민은 창조성이다. 관람객에게 쉽게 다가가면서도 관심과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얘깃거리를 얼마나 만들어 내느냐가 관건이다. 무조건 융합만 한다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제임스 터렐은 미술에 물리학을 적용해 국제 미술계에서 유명해진 설치작가다. 그는 빛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물리학을 전공한 끝에 ‘빛의 예술가’로 불리게 됐다. 프랑스 작가 루시앙 프로이드와 영국 작가 트레이시 에민은 심미학을 미술에 적용해 주목받았다. 영화감독으로 더 유명해진 줄리앙 슈나벨은 영상적 상상력을 강조한 화풍으로 세계 화단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미술평론가 정준모 씨는 “미술은 이제 다른 장르에 자양분을 제공하던 소스에 머물지 않고 시너지를 유발하는 창구로 역할이 바뀌고 있다”며 “현대미술과 다른 분야의 융복합 현상이 갈수록 활기를 띨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