텀블러 밀어낸 보틀 인기
텀블러의 뒤를 이을 새로운 유행이 등장했다. 바로 ‘보틀(bottle)’이다. 사실 일본의 ‘드링크웨어(drink ware)’ 업체인 ‘리버스(Rivers)’가 2000년에 제작한 민무늬 투명 보틀이 일본 현지에서 꾸준히 판매되던 것이 시초다. 그런데 일본의 생활용품 업체인 투데이즈스페셜(Today’s special)이 2012년 문을 열면서 이 보틀에 ‘마이보틀(MY BOTTLE)’이라는 문구를 인쇄해 달라고 주문, 더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가격은 약 1512엔(약 1만5000원)이다. 너무나 단순한 외관에 비하면 저렴하다고 할 수 없는 가격인 데도 불구하고 본사 직영 온라인 스토어에서 일찌감치 품절 사태가 일어났다.
이후 올해 초부터 인스타그램·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마이보틀에 과일이나 알록달록한 음료 등을 담은 사진이 퍼지면서 입소문을 타고 국내에까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아직 한국에 정식 수입되지 않기 때문에 이 작은 보틀을 구하기 위해 개인 블로그나 인터넷 카페를 통해 공동 구매를 하고 있다. 이른바 ‘프리미엄’을 얹어서라도 사겠다는 사람들이 많아 국내 파워 블로거의 공동 구매 가격이 최고 6만~7만 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중고품 거래 카페에서는 3만~4만 원대에 거래되고 있고 올라오는 즉시 판매된다. 공동 구매를 진행하는 블로그는 400여 개, 카페는 300여 개 생겨났다. 공동 구매를 진행하는 블로거 ‘바이어쏭’에 따르면 일본에 찾아가 대량으로 구매하는 한국인들이 늘어나자 투데이즈 스페셜에서 1인 2개로 구매를 제한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침부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구입한다. 게다가 투데이즈 스페셜의 매장은 일본 시부야와 지유가오카 두 군데밖에 없기 때문에 희소성이 높다.
이렇듯 인터넷의 개인 공간을 통해 퍼지던 보틀은 기업들의 눈에 띄었고 훨씬 빠른 속도로 퍼졌다. 리버스 측에서는 공식적으로 마이보틀과 동일한 문구는 문제가 되므로 받지 않겠다고 공지한 상태다. 이에 착안한 국내 기업은 리버스에 마이보틀과 똑같은 형태를 주문하며 문구만 다르게 의뢰했다. 그렇게 탄생한 망고식스의 ‘식스 보틀(SIX BOTTLE)’은 3차 예약판매까지 진행하며 총 3만여 개가 팔렸다. 망고식스 홍보 대행사 프레이온의 최병관 대표는 “1차 판매는 약 40분 만에 매진됐고 2차 판매는 개시에 앞서 동시 접속자의 폭증으로 홈페이지가 마비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며 “빠른 복구로 당일 전량 소진됐으며 이후 매장 판매로까지 이어졌다”고 전했다.
반면 리버스에 보틀 제작을 맡기지 않고 변형된 형태로 국내 공장에 제작을 의뢰한 기업들도 있다. 카페베네는 월드컵 기간에 맞춰 응원 수건과 악마 보틀로 구성된 ‘악마 패키지’를 판매했다. 월드컵 특수를 누리기 힘든 상황이었는데도 악마 보틀 덕분에 전국 매장에서 대부분이 품절됐다. 카페베네 홍보팀 관계자는 “요즘 인기가 많은 보틀에 월드컵이라는 시즌 이슈를 합쳐 기획했다”고 전했다.
판매 업체들에 따르면 보틀의 구매층은 트렌드에 민감한 20~30대 여성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보틀을 매일 이용하는 직장인 여성들에게는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편의점 업체도 이 ‘물병 전쟁’에 뛰어들었다. 세븐일레븐에서는 7월 11일 ‘세븐일레븐 데이’를 맞아 ‘럭키세븐 보틀’을 선보였고 판매한 지 1주일 만에 전국 판매 수량이 3만 개를 넘었다.
뚜껑에 고리를 달아 분실을 방지한 락앤락의 ‘비스프리 잇 보틀(It Bottle)’은 3000개 한정 예약판매로 출시했다가 ‘완판’된 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김민정 락앤락 홍보팀 과장은 “요즘 트렌드에 발맞춰 물병 중심으로 홍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희소성·개인화가 성공 코드
개인 온라인 숍들도 직접 리버스에 의뢰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국내 개인 숍에서 보틀을 주문하려면 한국 지부인 ‘리버스코리아’에 연락하면 된다. 최소 수량 300개부터 제작하며 한 달 정도 소요된다. ‘드링크 미(Drink Me!)’라는 문구를 넣어 제작을 의뢰한 순락종 딸기느낌 대표는 “1800개 정도 판매를 완료한 상태”라고 말했고 ‘이츠 마인(It’s Mine)’ 등 7개의 서로 다른 문구로 주문해 오픈 마켓에 위탁 판매하는 박선호 씨는 “약 3000개를 판매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마이보틀과 같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동일한 제품을 경제적 가격에 팔기 위해 판매를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이 1만5000원대다. 김지엽 타다소이캔들 대표는 “마이보틀에 웃돈이 붙어 너무 비싸게 팔리는 것을 보고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기 위해 리버스에 직접 의뢰했다”며 “차별화를 위해 커플용 문구로 제작했다”고 덧붙였다.
보틀의 인기에 대해 “한정이라는 데서 오는 희소성의 가치를 느끼는 명품 같은 효과”라고 김용태 김용태마케팅연구소 대표는 말했다. 또 “어떤 음료를 넣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개인화에 매력을 느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주영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한국유통학회장)는 “자신을 나타낼 수 있다면 단순한 기능 대비 가격은 상관이 없는 시대”라며 “남들보다 빨리 유행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그 정도 가격은 아깝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판매 업체들에 따르면 보틀의 구매층은 트렌드에 민감한 20~30대 여성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보틀을 매일 이용하는 직장인 여성들에게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이러한 주요 타깃을 염두에 둔 채 보틀 시장은 점차 변화하고 있다. 물병 제작 및 수입 업체 네이로는 구매자가 스스로 원하는 문구를 스티커 형태로 붙일 수 있게 만든 ‘커스텀 보틀’을 판매하고 있다. 이성진 네이로 대표는 “하루에 100개 이상 판매되는 등 마이보틀보다 더 인기”라며 “오히려 일본 역수출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또 리버스 보틀의 모양을 벗어난 다양한 형태의 보틀류도 덩달아 주목 받고 있다. 일본 수입품 쇼핑몰 오네가이샵에서는 ‘못타이나이 보틀, 프랑프랑 보틀’ 등 해외의 독특한 보틀을 판매하고 있다. “이제부터가 진짜 여름의 시작이니 판매량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한 김민정 락앤락 홍보팀 과장의 전망처럼 앞으로 더 더워지는 만큼 보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또 벌써 일본을 넘어 유럽의 ‘시퍼보틀’ 등이 서서히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 보다 다양한 모양의 보틀이 본격적인 ‘물병 전쟁’을 치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돋보기 보틀만의 인기 비결
투명 외관이 투명하고 심플하기 때문에 안에 어떤 음료를 넣느냐에 따라 색다른 표현을 할 수 있어 패션 아이템의 역할을 한다. 또 입구가 커 과일도 넣을 수 있어 더욱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다.
속뚜껑·겉뚜껑 탈부착하기 쉬운 속 뚜껑이 있어 물을 마실 때 쏟아질 위험이 없고 씻을 때도 편리하다. 겉 뚜껑은 돌리는 형식으로 견고하기 때문에 간혹 새는 경우가 있는 텀블러와 달리 내용물이 절대 새지 않는다.
트라이탄 미국의 이스트만케미컬에서 개발한 수지 원료인 ‘트라이탄(Traitan)’을 사용해 섭씨 영하 40도부터 영상 100도까지 담을 수 있고 보온·보랭 효과도 있다. 무엇보다 굉장히 가볍다. 또 환경호르몬이 ‘제로(0)’이기 때문에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다.
이시경 인턴기자 c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