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허슬', 속고 속이는 美정치…배꼽잡는 풍자
올 아카데미 작품상 등 10개 부문 후보에 오른 ‘아메리칸 허슬’(20일 개봉)은 1970년대 미국에서 실제 일어났던 정치 부패 스캔들 ‘앱스캠’ 사건을 모티프로 사기와 거짓이 판치는 미국 사회를 풍자한 수작이다.

“세상은 흑과 백이 아니야, 그냥 다 회색이지”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라는 대사들은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다. 흥미로운 대목은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범죄자를 검거하기 위해 진짜 사기꾼들을 끌어들여 함정 수사를 펼친다는 것. 이로써 사기꾼뿐 아니라 경찰과 정치인도 모두 비슷한 부류임을 부각시킨다. 저마다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는 인물들의 개성을 잘 살린 영화다.

FBI 요원 디마소(브래들리 쿠퍼)는 부패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최고의 사기꾼 커플 어빙(크리스천 베일)과 시드니(에이미 애덤스)를 스카우트한다. 그런데 수사 도중 상·하원 의원들과 마피아까지 연루되면서 사기꾼 커플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설상가상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어빙의 아내 로잘린(제니퍼 로렌스)까지 가세하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이 사건에 나오는 경찰이나 정치인을 포함한 모든 캐릭터들은 본질적으로 사기꾼이거나 허풍쟁이다. 그런데 그들에겐 훌륭한 배우와 공통점이 많다. 남에게 사기를 치려면 설득력이 있어야 하고, 스스로 신사로 포장하기 위해 훌륭한 말솜씨와 위장된 행동을 해야 한다.

이는 배우의 속성과도 같다. 배우는 자신이 아닌 상상의 인물을 끌어들여 관객에게 사실인 것처럼 믿게 하는 직업이다.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이 사기꾼으로 등장해 서로 속이면서 다채롭고 유머러스한 캐릭터들의 성찬이 마련된다.

첫 장면에서 늘씬한 미남배우 크리스천 베일(어빙)이 대머리 뚱보로 등장하는 모습부터 코믹한 요소가 살아난다. 어빙이 대머리를 가발로 가리는 행위는 그가 진실을 감추려는 사기꾼임을 내포한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