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JOB 인터뷰 결산] 32세 나이에도, 75번 '광탈'에도 취업문 뚫었다
지난해 말 한국남부발전 신입사원이 된 조권환 씨(33).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20세에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막일부터 장사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찾았다. 삶은 마음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7세에 뒤늦게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업은 쉽지 않았다.

그나마 공공기관 청년인턴이 한가닥 희망이었다. 2010년 나이 서른에 5개월간 한국남부발전 청년인턴을 하면서 정규직 전환을 꿈꿨다.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이듬해 다른 발전 자회사 청년인턴에 또 도전했지만, 정규직 채용에서 좌절을 맛봤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또 공기업 청년인턴을 했다. 인턴이었지만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10시까지 일하는 성실함을 보였다. ‘야근하는 인턴’이란 별명까지 붙었다. 마침내 한국남부발전 정규 신입사원 배지를 단 조씨는 현재 신인천발전소에서 가스터빈을 담당하고 있다.

○성공DNA의 빛과 그림자

2013년 한 해 동안 매주 한 개 기업을 순회하면서 110명의 신입사원을 만났다. 올해 4년제 대학을 졸업한 30여만명(작년 여름 졸업자 포함) 가운데 평균 취업률 55.6%(6월1일 기준)를 뚫고 일어선 이들이다. 취업률은 한 해 전(56.2%)보다 더 낮아졌다. 높디 높은 한국 사회 취업문 앞에서 아픔을 딛고 일어선 ‘가슴 찡한 취업이야기’가 이어졌다. 이들은 각 기업의 대표급 신입사원이었지만 ‘고스펙’보다는 ‘취업에 성공할 수밖에 없는 DNA’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SK건설에서 구매업무를 맡고 있는 김지수 씨(32)도 그런 케이스다. 31세, 75번 입사 지원, 3점대 학점. 스펙이 거의 없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도전하고 또 도전했다. 그는 작년 하반기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다. 지난 9월 SK그룹의 채용설명회 ‘탤런트 페스티벌’에 선배 자격으로 나와 특강까지 했다.

김씨는 절망을 딛고 75번의 자소서를 썼지만, 복사가 아닌 매번 새로운 마음으로 썼다고 소개했다. “SK 자소서를 쓰는 날 다른 기업의 불합격 통보를 받았어요. 마음속엔 눈물이 흘렀지만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한번 써서 안 되면 또다시 쓰는 거예요. 결국 어떤 한 기업은 분명히 여러분을 알아봐줄 겁니다. SK가 저를 알아본 것처럼요.”

○“업무는 힘들어도 지금이 행복”

이 밖에도 수많은 사연이 있었다. 오랜 고시생활로 어학점수도 없고 학점은 3점대 초반밖에 안됐지만 ‘실패를 통해 배운 세 가지 지혜’로 면접관을 감동시킨 SK에너지 강다재 씨(31), 대학생활 중 취업을 위해 13개의 자격증을 따고 ‘최다 회식 참석 인턴’이란 별명을 얻을 만큼 성실했던 롯데마트 김인석 씨(27), 50여개 기업에서 ‘광탈’(빛의 속도로 탈락)의 아픔을 겪은 뒤 한국맥도날드에서 입사 4년 만에 점장이 된 배경서 씨(30), 3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카페베네 뉴욕 1호점 청년인턴의 기회를 잡은 김정훈 바리스타(26), 100번의 입사 실패 후 찾아온 단 한 번의 인턴을 기회로 만든 aT 진태훈 씨(29)….

입사한 지 1년이 다 돼가는 이들에게 세밑에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다들 업무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올 1월 초에 만난 조권환 씨는 “(시끄러운 기계음 너머로) 현장근무 중이라 이따 다시 전화드리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몇 시간 후 전화를 건 그는 “무스펙에 가까운 제가 합격했다면 누구든 취업할 수 있는 곳”이라며 취업준비생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효성의 신입사원 이유현 씨는 나중에 이메일로 “저 역시 취업준비 때가 가장 힘들었다”며 “사실 물리적인 차원에선 회사 업무가 더 피곤하고 힘들지만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전했다. 코웨이의 서수덕 씨는 “직장생활은 산넘어 산”이라며 “업무와 자기계발 그리고 인간관계의 산이 있었다”고 전했다.

○“준비된 자에게는 꼭 기회가 온다”

[2013 JOB 인터뷰 결산] 32세 나이에도, 75번 '광탈'에도 취업문 뚫었다
새내기 직장인으로서 느낀 소감과 소망도 물어봤다. LIG손해보험에서 법인영업을 하고 있는 김상훈 씨는 “입사 전엔 뭐든지 열정만 있으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입사해보니 사람과 네트워크,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 등도 열정 못지않게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취준생들을 위해선 ‘기죽지 말 것’을 당부했다. 진태훈 씨(aT)는 “취업 준비기간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주변의 기대였다”며 “그렇지만 친구들의 ‘괜찮아, 잘될 거야, 힘내!’라는 격려의 한마디가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박원일 씨(오리온)도 “준비된 자에게는 기회가 오기 때문에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으면 기회는 꼭 올 것”이라고 용기를 북돋웠다. 조혜진 씨(중소기업진흥공단)도 “후배들이 진정 가고 싶은 길을 간다면 기업은 알아볼 것”이라고 조언했다.

신입사원들의 말말말 "면접관 사로잡는 1분 PR…자신감 있는 목소리·아이콘택트·유머"

△권민욱(대림산업)=“연봉·직장이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먼저 찾으세요. 그럼 이미 절반은 취업이 된 겁니다.”

△허민영(롯데홈쇼핑)=“하고 싶은 일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간절함, 그리고 열정이 있다면 면접관이 먼저 알아볼 거예요.”

△김세미(수자원공사)=“무려 10개월간 인적성에 투자했어요. 모르면 무조건 외웠고 반복해서 풀었죠. 그랬더니 수·추리, 자료해석 문제도 시간 내 다 풀 수 있었어요.”

△김명준(세아상역)=“면접관 사로잡는 1분PR 비결은 자신감 있는 목소리, 아이콘택트, 재치있는 유머죠.”

△진태훈(aT)=“인턴 때 ‘난 인턴이 아니라 정직원’이라는 생각으로 일했더니 정말 정직원이 되더라고요.”

△이재준(자산관리공사)=“궂은 일은 내가 먼저 하자는 생각으로 인턴에 임했더니 불평불만이 사라졌어요. 지금도 생수통 교체와 프린터 용지 갈아끼우기는 제가 도사입니다.”

△김수민(외환은행)=“‘그대의 계절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곧 그대는 꽃을 피우리라’는 아버지가 보내주신 문구가 큰 힘이 됐어요. 취준생 여러분의 계절은 분명히 꼭 올 겁니다.”

△이유현(효성)=“여직원이라서 이게 힘들고, 여직원이기에 이걸 더 해줘야 되고…. 이런 기대를 가지면 더 힘들어지죠. 저도 여직원이라기보다는 그냥 효성 직원으로 생각하고 일하고 있어요.”

△강동철(현대중공업)=“이쁨받는 후배는 묻는 사람입니다. 처음엔 모두가 모르지만 묻는 사람과 안 묻는 사람은 1년 후엔 천지차이가 될 것입니다.”

△황다혜(기업은행)=“은행원이 되려면 항상 웃는 연습을 하세요. 습관이 되도록 말이죠.”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