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보상 확정 후 6개월 내 손배소 제기 시 손해배상청구권 인정

과거사 사건에서 재심을 통해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지 6개월 안에 형사보상을 청구했다면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가 지났더라도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김모(57)씨와 그의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가 이들에게 1억7천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3일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가 재심 무죄확정일로부터 6개월 내에 형사보상을 청구했고, 형사보상 결정 확정일로부터 6개월 내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으므로 소멸시효가 지났더라도 권리 행사를 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며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심 무죄판결 확정일로부터 6개월 내에 손해배상 소송을 내야 하지만 그 기간에 형사보상 청구를 했다면 형사보상 결정이 확정된 이후로부터 6개월까지는 권리 행사 기간이 연장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의미다.

1981년 일본계 조총련 소속인 친척들과 왕래하고 이들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은 김씨는 1983년 군 보안부대에 강제 연행됐다.

당시 군 보안부대는 구속영장 없이 김씨를 강제 연행해 38일간 불법 구금했고, 구타와 물고문 등 가혹행위를 통해 억지 자백을 받아냈다.

김씨는 1984년 국가보안법위반 등의 혐의로 대구고법에서 징역 12년과 자격정지 12년의 확정 판결을 받은 뒤 8년간 복역하다 1991년 가석방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2009년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김씨는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유죄판결을 내렸다"며 2010년 재심을 청구했다.

대구고법은 김씨의 혐의 가운데 여권법 위반 등 일부만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재심판결이 확정된 후 2011년 2월 형사보상을 청구해 같은 해 12월 3억7천만원을 보상받았고, 이듬해 2월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정부는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지나 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1심과 2심은 소멸시효가 지나도 권리행사를 할 수 있는 사유가 있다고 판단, 모두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신영 기자 eshin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