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온도 벌써 50도
서울지역에 올 겨울 들어 첫 번째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12일 오후. 명동 예술극장 앞 자선냄비에 60대로 보이는 바바리 코트 차림의 노신사가 나타났다. 깔끔한 외모의 노신사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하나 꺼내 자선냄비에 넣고는 명동성당 방향으로 사라졌다.

모금이 끝나고 정동 구세군자선냄비본부에서 자선냄비를 정리하던 구세군 관계자들은 흰 봉투를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은행에서 즉시 인출할 수 있는 6800만원 상당의 무기명 채권이 들어 있었다. 흰 봉투를 넣던 바바리 코트 노신사의 모습을 떠올린 구세군 관계자들은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그를 찾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어지는 경기 불황으로 살림살이는 팍팍해졌지만 연말연시를 맞아 어려운 이웃을 도우려는 얼굴 없는 천사들은 기부의 손길을 이어가고 있다.

구세군 자선냄비를 비롯해 각종 기부단체의 모금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늘어났다. 부자들이 거액을 내는 기존 기부 개념에서 벗어나 누구라도 언제든지 소액 기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면서 기부문화가 정착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20일 구세군에 따르면 자선냄비 거리 모금을 시작한 지 17일 만에 36억6000만원의 기부금이 모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30억원보다 22% 늘어난 액수다. 구세군은 지난 2일부터 전국 각지의 도심을 비롯해 지하철 터미널 톨게이트 등 350여곳에서 길거리 모금을 하고 있다.

구세군 관계자는 “지금 추세라면 올해 모금액은 역대 최대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선냄비 최대 모금액은 지난해 기록한 50억원이다.

‘사랑의 열매’로 잘 알려진 국내 최대 법정 모금기관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도 지난달 20일 ‘희망 2014 나눔 캠페인’을 시작한 이후 이날까지 1524억원을 모았다. 기부금 모금 지표인 ‘사랑의 온도’는 이날 49도를 기록, 캠페인 시작 한 달 만에 50도에 육박했다. 목표액의 1%를 달성할 때마다 1도씩 올라간다. 공동모금회는 올해 모금액을 지난해(3020억원)보다 3% 많은 3110억원으로 잡았다.

김석현 공동모금회 대외협력본부장은 “올해도 사랑의 온도는 지난해에 이어 100도를 무난히 넘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경민/홍선표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