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스펙·취업 불안에 시달리는 20대, 참다간 골병든다
아프니까 청춘?…스펙·취업 불안에 시달리는 20대, 참다간 골병든다
서울 A대학 졸업반인 한정민 씨(23)는 요즘 들어 모든 것이 답답하고 우울하다. 이미 취업을 한 친구들에 비해 자신은 너무 뒤처진 것 같아 불안하다. 사람들과 어울리면서도 고립된 것 같고, 자신감이 떨어지면서 이상하게 실수가 잦다.

취업 준비는 이맘때 청년이라면 누구나 감당해야 하는 당연한 것이라 여기면서도 매일 찾아오는 두통을 참기가 어렵다. 용기를 내 얼마 전 병원을 찾았지만 특별한 이상은 없다. 주변 친구들과 이런저런 고민을 얘기하려고 해도 다들 바쁜 것 같아 쉽사리 다가가기가 어렵다. 한씨는 갈수록 혼자 있는 시간이 늘고 있다고 느낀다. 최근에는 혼자 중얼거리는 습관도 생겼다.

○사회 적응 어려운 20대 증가

‘학업 부진, 취업 불안, 학교생활 부적응, 가족과의 갈등….’

젊은이들이 견딜 수 없는 고통에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경찰청이 정확한 통계를 내고 있지는 않지만 연말이 될수록 젊은층 자살이 많다는 것이 단적인 예다. 어린시절 과보호와 교육의 불균형, 가치관의 혼란으로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다.

서울시정신건강증진센터가 최근 서울 소재 3개 대학 571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실태조사를 벌였다. 결과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었다. 정신적으로 힘들어 도움을 받고 싶다는 비율이 97%나 됐다. 정신건강 위험신호를 보인 비율은 10%에 달했다.

실제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 대학상담센터, 정신보건 관련 기관, 주변인 순으로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고려대 학생상담센터 관계자는 “상담센터를 찾는 학생은 학업이나 취업 불안감뿐만 아니라 가족·친구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정신적인 갈등이 발생했을 때에도 전문기관을 찾지 않는다는 것. 이 관계자는 “뚜렷한 정신과적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전문기관에 도움을 요청하기보다 가족들에 의해 비치료적인 곳으로 보내지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의 벽을 실감한다는 것이다.

○위태로운 스트레스 증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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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적인 스트레스는 다양한 증상을 초래한다. 스트레스가 감당하기 힘들 때는 현실왜곡 현상이 나타난다. 주로 자신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자신을 불편하게 하고, 괴롭힌다고 여기고, 분노감정을 드러내거나 사회공포로 이어진다.

사고의 혼란도 흔하다. 집중이 안 되고 주의가 산만해진다. 논리적으로 정리가 안 돼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결국 대인관계에 실패하고 학업에 지장을 초래해 갈등의 악순환이 심해진다.

감정 표현에도 한계를 드러낸다. 이동수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는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남에게 전달함으로써 불안·분노·슬픔을 해소한다”며 “하지만 정서적으로 불안한 청년층은 감정을 전달하지 않는 것은 물론 표현도 둔화된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병이 깊어지면 환각과 착각이 생긴다. 존재하는 자극을 잘못 보거나 들었다면 착각 증상이다. 또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혼자 보고 듣는다면 환각·환청이다. 이 교수는 “병이 들면 떠들고 다니라는 말이 있는데, 청년들의 정신적 스트레스 증상은 얘기를 하고 함께 고민하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일찍 도움 받을수록 빠른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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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수 서울시정신건강증진센터 센터장은 “대학생의 정신건강 문제는 대부분 일시적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지만 때론 우울증·정신분열병 같은 정신질환의 초기증상일 수 있으므로 정확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의는 먼저 상담과 정신과적 평가를 통해 일반적 스트레스인지, 아니면 고위험(발병 전 위험증상) 상황인지를 판단한다. 고위험군을 평가하기 위해선 임상 및 신경 인지기능 평가, 뇌파·신경영상학 검사 등을 시행해 결과에 따라 약물과 인지치료를 한다. 초기 증상이 호전되면 재발 방지를 위해 1 대 1 상담관리 서비스와 사회 적응 및 유지를 위한 교육을 한다.

이 교수는 “청년기의 정신질환은 초기에 적절한 대처가 이뤄지지 않으면 중증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초기 치료는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시정신건강증진센터(02-3444-9934 www.blutouch.net)는 조기 정신질환 관리를 위한 컨소시엄(서울시정신건강증진센터, 서울시립보라매병원, 서울시립은평병원, 서울대병원, 연세대의료원)을 운영 중이다. 대학생을 비롯한 청년들이 자신의 정신건강 문제를 표현하고 상담을 요청하도록 돕고 있다. 홈페이지에서 ‘마인드스파’라는 코너를 운영, 인지행동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스스로 정신건강 진단을 할 수 있다.

조기정신증관리팀과 중독관리팀에선 게임·알코올 중독 등에 대한 상담도 진행한다. 이 센터장은 “부정적 행동을 긍정적으로 바꾸도록 마인드컨트롤할 수 있는 상담을 진행 중”이라며 “야간에도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에서 운영하는 마음이음상담전화(1577-0199)를 통해 각종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도움말 = 이동수 삼성서울병원 교수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