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미투 상품에 몸살 앓는 보험사
“몇 년 동안 공들여 참신한 보험을 출시해 봐야 금세 다른 곳에서 같은 상품을 내놓으니 차별화를 할 수가 없습니다.” 한 중소형 보험사 임원의 하소연이다. 대형사보다 인지도가 낮고 ‘규모의 경제’도 안되는 탓에 참신한 상품으로 승부해 보려 노력하지만 현실의 벽이 높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해외 사례 등을 연구해 힘들게 새 보험을 출시하면 얼마 안돼 비슷한 상품이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게 다반사다. 흥국생명이 지난 9월 암 진행 단계별로 보험금을 차등지급하는 상품을 처음 선보이자 두 달도 안돼 한 대형 보험사에서 이른바 ‘미투(me too)’ 보험을 출시했다. 그뿐 아니다. 무려 16개사가 상품 개발에 필요한 통계를 흥국생명에 제공한 해외 재보험사에 업무협약 체결을 요청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국내 보험 상품들은 별다른 차별성이 없다. 모든 보험사가 암보험 실손보험 등 그때그때 인기를 끄는 유사한 상품으로 경쟁하는 모양새다.

물론 창의적인 보험상품은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를 통해 배타적 사용권을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보호기간이 3개월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권역별로만 보호가 돼 생명보험사가 개발한 상품을 손해보험사가 따라 할 경우 제재할 방법이 없다.

해외 보험사들은 ‘붕어빵 보험’을 찍어내는 한국 회사들과 다르다. 시장을 쫓아가기보다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특화한다. 미국 스테이트팜은 주택·자동차보험만, 독일계 글로벌 보험사 다스는 법률비용보험만 취급하고 있다. 영국의 히스콕스는 납치·문화재보험 등으로 입지를 굳혔다.

국내에 진출해 있는 외국사들도 마찬가지다. 종신보험에 집중하는 푸르덴셜생명이나 상해보험에 특화한 AIG손해보험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차별화된 영업전략을 밀어붙인 덕분에 매출은 적어도 수익성에서 국내 대형 보험사들을 월등히 앞선다.

새 시장 개척보다 히트 상품을 재빨리 베껴 내는 데 더 집중하는 지금의 분위기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보험사 탄생은 요원하다. 저금리와 고령화로 경영리스크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 살 깎아 먹기식 경쟁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보험의 미래는 우울할 수밖에 없다.

김은정 금융부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