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속·장치이상 인지" 지적에 '억측' 반론도 제기
11시간 30분 마라톤 진행…한국·중국어 동시통역
기장 인터뷰 등 수천쪽 분량 133건 조사자료도 공개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가 11일(현지시간) 워싱턴DC 본부에서 개최한 샌프란시스코공항 아시아나항공 214편 여객기 사고조사 청문회는 조종사 과실 여부에 초점이 맞춰졌다.

기장 등이 사고기종인 보잉 777기의 자동조종장치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상황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의혹에 대한 질문이 집중됐으며, 공항 시스템 문제와 사고기종의 설계 문제, 조종사 문화 등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특히 이날 공개된 조사 보고서에도 조종사가 사고 직전 비행 고도와 속도가 너무 낮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긴장한 상태에서 조종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논란을 예고했다.

지난 7월 사고 이후 조사를 진행해온 NTSB는 이날 청문회 결과를 바탕으로 추가 조사와 검토 작업을 벌인 뒤 내년 7월께 데버러 허스먼 위원장을 포함한 5명의 위원이 참석하는 전체회의를 열어 최종 보고서를 채택할 예정이다.

◇ "자동조종장치 과다 의존 쟁점"

NTSB가 이날 공개한 조사보고서에는 이강국 기장이 조사관들과의 인터뷰에서 착륙 당시 속도가 너무 낮았고 자동조종장치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답한 내용이 포함됐다.

보고서는 "그(이강국 기장)는 주비행표시장치(PFD)에 속도가 최저범위 이하를 의미하는 회색 구간 이하로 떨어진 것을 봤다"면서 "또 확실하진 않지만 속도계 하강이나 오토스로틀(자동속도 조정장치) 해제 등이 표시된 것을 본 것으로 진술했다"고 전했다.

특히 이 기장은 당시 비행 전부터 상당히 긴장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그는 "보잉777과 같은 큰 기체의 시계접근(비주얼 어프로치)은 항상 '매우 긴장되고 어렵다'(very stressful, very difficult to perform)"고 말했으며, 당시 항공정보 제공 시스템인 노탐(NOTAM)을 통해 사고 활주로의 사용이 금지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른 조종사들도 모두 시계접근을 하기 때문에 걱정하면서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활주로와 충돌하기 약 2분전 하강속도가 정상 수준보다 4배나 빨랐던 것으로 나타났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러나 NTSB 관계자는 "항공기 사고의 원인 규명 작업은 항상 조종사 과실 여부가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일 수 밖에 없다"면서 "오늘 청문회는 책임 추궁을 위한 게 아니라 사실확인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설계·훈련·긴급대응 등 질의 쇄도

이날 청문회는 보잉777 기종의 설계, 자동조종장치에 대한 조종사 훈련, 자동화와 조종행위에 미치는 영향, 긴급구조 대응, 탑승객 보호 등 모두 5가지 분야로 구분돼 진행됐다.

허스먼 위원장 등 NTSB 위원과 6명의 기술패널,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아시아나조종사노조(APU), 보잉, 샌프란시스코 시당국, 연방항공청(FAA), 탈출슬라이드 제조사인 에어크루저 등 6개 관련 업체·기관들이 사고 조사와 관련된 증인 20여명을 상대로 질의를 벌였다.

한국어와 중국어로 동시 통역된 청문회에서는 대형 화면을 통해 보잉777기의 실제 조종석을 담은 컴퓨터 그래픽 등을 보여주면서 사고 전후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기도 했다.

특히 패널은 보잉777기의 시계접근 방식과 설계 문제를 비롯해 조종사 훈련, 한국 정부의 훈련 감독, 자동조종장치의 경함 가능성, 사고발생시 탈출시스템 설계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당초 청문회는 지난 10일부터 이틀간 열릴 예정이었으나 워싱턴DC 등 수도권에 불어닥친 눈폭풍으로 인해 연기되면서 이날 하루 무려 11시간 30분(휴식시간 포함)동안 이어졌다.

허스먼 위원장은 이날 청문회를 시작하면서 철저한 사고규명을 위해 미국은 물론 한국, 중국, 프랑스, 네덜란드의 전문가들이 참석했다고 소개한 뒤 "오늘은 긴 하루가 될 것"이라면서 "그러나 이런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좋은 교훈을 얻길 바란다"고 말했다.

◇ '여론몰이' 지적…내년 7월 결론

CNN방송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들은 이날 청문회를 보도하면서 "NTSB는 조종사가 보잉777기의 자동조종장치에 지나치게 의존했을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전했다.

이강국 기장 등의 인터뷰 내용을 전하면서 사고 활주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긴장했고 '오토스로틀' 등이 작동하지 않은 것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대응이 미숙했다는 점에 관심을 집중한 셈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다른 한편에서는 사고기의 설계 및 작동이나 공항 운영의 문제 등 다른 요인들을 무시한 채 조종사 과실로만 몰아가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NTSB가 초기 조사내용과 함께 이날 청문회 답변 등을 토대로 추가 조사와 사실확인 작업을 거친 뒤 최종보고서를 내놓더라도 논란은 끝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청문회에 앞서 한국 언론을 상대로 한 사전브리핑을 했던 NTSB는 이날 자체 인터넷 홈페이지에 총 수천페이지 분량에 달하는 사고 보고서 133건을 게재하면서 '투명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사고기 조종사들은 이날 청문회에 초청하지 않았으며, 초기 조사를 마쳤다는 이유를 든 것으로 알려져 조사 절차에 대한 논란도 예상된다.

(워싱턴연합뉴스) 이승관 특파원 huma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