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국회가 공전된 지 엿새 만에 일부 가동돼 내년 예산안과 부수법안 심의를 시작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어렵사리 국회 정상화에 합의한 결과다. 쟁점이었던 국가정보원 문제는 개혁특위를 즉각 구성하고, 특별검사제는 계속 논의한다는 선에서 접점을 찾았다.

새해 예산안을 연내 처리하기로 합의했지만 이미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을 넘긴 상황이다. 357조7000억원에 달하는 새해 나라살림을 제대로 심의하기엔 시일이 너무 빠듯하다. 복지부문만 해도 기초연금이 신설되면서 내년엔 예산 100조원 시대에 들어선다. 법안 처리도 온통 지뢰밭이다. 경제활성화를 강조한 새누리당의 중점법안 15개와 민생살리기를 내세운 민주당의 중점법안 41개는 완전히 딴판이어서 겹치는 게 단 한 건도 없다. 그런 탓에 지금껏 법안처리 실적은 전무하다. 졸속 아니면 파행이라는 정기국회의 오랜 구태가 벌써 눈앞에 어른거린다.

정치권이 무엇을 위해 투쟁했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밤을 새워서라도 심의하고, 협상하고, 하나씩 합의해나가야 할 중대한 시기에 아까운 시간을 날려버렸다. 그런데도 여당과 야당은 국회에 들어가 일하는 것을 대단한 일처럼 여기는 모양새다. 의무를 권리 내지 특권인 양 착각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행태다. 그렇게 해서 상임위별로 예산심의에 들어가면 기껏 지역구 예산부터 챙기고, 그것도 모자라 쪽지예산 돌리기가 예사다. 내 밥그릇 챙기는 것은 힘깨나 쓴다는 의원들일수록 더하다. 여야 구별도 없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여전히 특검에 몰두하는 모습도 보인다. 1년이 다돼가는 지난 대선에 대한 불복 정서와 무관하지 않은 특검 집착은 투쟁 콤플렉스에 다름 아니다. 예산과 경제법안만이 과제가 아니다. 한반도 주변에 시커먼 먹구름이 쌓여가고 북한에서도 조짐이 심상치 않다. 정기국회의 성패에 정치권의 생존이 달렸다. 앞으로 25일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