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가 신(神)은 아니잖아요. 경찰 수사권 독립도 중요하지만 검찰의 수사권과 공소권을 분리해야 이런 일이 또 벌어지는 걸 막을 수 있을 겁니다.”

1일 오후 2시께 서울 구의동 자택에서 만난 이철규 전 경기경찰청장은 차분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지난해 2월부터 시작돼 20개월을 끌어온 길고 긴 소송이 대법원의 무죄 확정판결로 막을 내렸지만 이 전 청장의 얼굴엔 피곤과 허탈함이 가시지 않았다.

“20년 넘게 한 동네에서만 살았는데 지방경찰청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뇌물을 받아 챙겼다는 소문이 동네에 돌아 아내와 아들, 딸들이 얼굴을 들고 돌아다닐 수 없었다”고 말하는 이 전 청장의 표정엔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진하게 묻어났다.

일부에서 제기되는 검찰의 ‘표적 수사’에 대해 묻자 이 전 청장은 1990년대 말로 기억을 되돌렸다. 서울 종로경찰서 정보과장을 거친 정보통이었던 이 전 청장은 김대중 정부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꾸리고 정권 출범을 준비하던 1998년 초 경찰에서 인수위로 파견됐다.

당시만 해도 경찰 수사권 독립을 공론화하려는 시도 자체가 번번이 좌절을 맛보던 시기였지만 이 전 청장은 경찰 수사권 독립을 김대중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 “1990년대 경찰 수사는 일일이 검찰의 지휘를 받는 ‘영혼 없는 수사’였다”며 “고성이 오갈 정도로 부딪히고 인수위원들을 일일이 찾아가 설득하면서 수사권 독립을 공론화했다”고 회상했다.

경찰과 같은 내무부 소속이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법무부 밑으로 옮기려던 검찰의 시도와 검찰이 주도한 ‘유전자은행’ 설립을 막은 것도 그때였다. 이 전 청장은 “검찰 입장에선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라며 “지난해 검찰이 나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도 별로 놀랍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격정을 토해내던 그는 진로에 대해선 조심스런 모습을 보였다. 이 전 청장은 “인사는 인사권자가 결정하는 것이기에 내가 직접 말을 꺼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조치가 취해질 것을 기대한다”고만 했다. 이 전 청장은 다만 “지금 여기서 물러나는 것은 명예롭지 못하다”며 자의로 사임할 뜻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 전 청장은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을 묻자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분당경찰서장으로 재직하던 2003년 당시 있었던 소송까지 그동안의 송사로 몸과 마음이 너무 피폐해졌다”며 “공무원 신분으로 국가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