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인도네시아 발리 APEC 정상회의에서 전송돼온 몇 장의 사진은 소원해진 한·일 관계를 여실히 보여줬다.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의 최대 지역협력기구 회의장에서 하필 나란히 앉은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이에는 찬바람이 흘렀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도 홈페이지에 두 사람이 시선을 외면하거나 아베 총리가 일방적으로 박 대통령을 바라보는 사진을 여러 장 게재하며 관심을 드러냈다. 박 대통령은 이미 미·중·러와 각각 정상회담을 하고 관계를 다졌지만 일본과는 주어진 만남조차 애써 피해야 하는 상황이 장기화된 것이다.

생활정치를 내걸었던 일본 민주당이 지난해 3년 만에 정권을 내놓고 자민당이 재집권한 지난 1년간 일본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우리는 너무 잘 안다. 자민당의 퇴행적 국수주의는 지금도 계속돼 국제사회가 끝없이 우려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해서 지금 같은 식의 파행적 한·일 관계를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양국 모두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할 때가 됐다. 일본이 저렇게 일방적으로 나가는 한 한국 정부에 별 수단이 없다는 말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일본의 오도된 역사인식은 거의 정신질환적이라고 하겠지만 그렇다고 이를 무한정 방치할 수는 없지 않나. 대화 자체가 끊어져 버린 작금의 상황은 누구에게도 이로울 것이 없다.

한·미·일 동맹은 오랫동안 동북아의 안정과 번영, 평화를 보장해왔던 기본적인 틀이다. 북한의 핵도발에 대응하고 초군사대국화한 중국과 힘의 균형을 맞추는 데 더욱 긴요한 체제다. 4강이 부딪쳐온 한반도 주변 역사다. 그렇기에 동북아 평화는 더욱 사활적이다. 지금의 한·일 관계는 다른 주변국가들에도 이로울 것이 없다. 지향점은 현재의 평화요, 미래의 발전이어야 한다. 미국은 국무·국방장관이 나란히 일본을 방문해 동맹관계를 공고히 하고 있다.

재정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은 일본의 군사력에 더 기대야 할 처지다. 한·일 관계의 정상화를 위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지 한국과 일본의 정치가 깊이 생각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