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도둑 이사' 말 바꾸는 법무부
“동네 입장에선 잘된 일이지만, 이걸 해결이라고 해야 할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 같기도 하고요.”

법무부가 분당의 수원보호관찰소 성남지소(성남보호관찰소) 이전 전면 재검토를 발표한 다음날인 10일, 한 법조계 관계자는 시설 이전을 피한 것은 (주민 입장에서)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 과정에서 보인 정부의 업무 처리 방식이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고 우려했다.

법무부는 지난 4일 성남시 측과 협의 없이 새벽에 분당구 서현동에 성남보호관찰소를 입주시키면서 ‘도둑 이사’ 논란을 빚었다. 1500명가량의 보호관찰 및 사회봉사명령 대상자를 관리하고 있는 성남보호관찰소는 2000년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전할 때마다 해당 지역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해 지금껏 청사를 마련하지 못하고 계속 옮겨 다녔다. 대규모 시위와 학생들의 등교 거부가 이어지는 등 사태가 확산되자 지난 9일 새누리당은 법무부에 계획 재검토를 강력히 요구했다. 법무부는 곧바로 “청사 이전을 재검토하고 서현동 청사에서 업무를 중지하겠다”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법무부가 지난해 모든 시설에 보호관찰소가 입주할 수 있도록 건축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예고됐다. 건물주와 계약만 맺으면 해당 지방자치단체나 주민과의 협의 없이도 입주가 가능해졌다.

혐오시설을 기습 이전했다가 주민의 반발과 표를 의식한 여당의 급제동으로 보호관찰소 이전은 원점으로 돌아갔지만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사전에 주민과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고 이전을 강행한 탓이다.

원칙 없는 대응과 말 바꾸기도 문제다. 법무부는 당초 “비교적 경미한 범죄자들만 관리 대상이라 크게 위험한 시설이 아니다”며 강행의사를 보였다. 그러나 5일 동안 주민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지고 여당의 압박이 가해지면서 정부는 입장을 180도 바꿔 혼란을 빚었다.

보호관찰소는 어딘가에는 들어서야 할 필요시설이다. 법무부 주장대로 위험성이 낮고 입주가 정당한 시설이 맞다면 말을 바꾸기보다는 주민들과의 대화를 통한 설득을 시도했어야 옳다. 법무부의 줏대 없는 행동으로 지난 8월 말 이전한 원주보호관찰소 주변 주민의 반발이 시작됐다고 한다. 다른 지역에서 ‘제2의 성남보호관찰소’ 사태를 막으려면 ‘눈치보기 행정’보다 주민들을 설득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정소람 지식사회부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