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英 경마·美 로데오서 배우는 것
벼는 부지런한 농부의 새벽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言)은 축산농가가 키우는 말(馬)에도 해당된다. 축산 농부에게 가축은 생계 수단이기 전에 가족과 같기 때문이다.

제주도가 말의 고장이긴 하지만 말을 키우는 축산농가가 본격적으로 수익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불과 30년밖에 안 됐다. 그 전에는 경마에 사용하는 경주마의 대부분을 미국 호주 등에서 수입했는데, 1980년대 국산 축종 활성화 계획의 일환으로 토종 국산 경주마를 키워내자는 열망이 싹을 틔웠다. 그러나 수백년 동안 말을 개량하기 위해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인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수준이 많이 떨어진다. 전문 인력도 적거니와 참고할 만한 기술 서적도 변변치 않다. 농작물의 씨앗 전쟁처럼 여러 선진국은 말 역시 국가의 중요 자원으로 인식하고 쉽게 기술을 개방하려 하지 않기에 기술 수입도 어려운 형편이다.

그나마 2011년에 제정된 말산업 육성법 덕분에 숨통이 조금 열렸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특정 가축에 대해 특별법을 제정한 것으로, 친환경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서 말산업의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다. 그러나 말산업 육성법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나 지자체 등에서 말산업 육성과 지원을 위해 발 벗고 뛰고 있지만 말산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의 관심이 필요하다. 소는 한우, 돼지는 한돈이라고 해서 범국민적 관심과 애정을 보이지만 말은 아직까지는 낯선 가축에 불과하다.

얼마 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왕실 소유의 경마장에서 열린 경마대회에서 자신이 소유한 경주마가 우승하는 장면을 보고 소녀처럼 기뻐하던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원래 말을 활용한 경마나 승마는 그 나라의 독특한 전통을 상징하는 문화 매개체다. 영국의 경마, 독일의 승마, 미국의 로데오가 그렇다. 요즘은 단지 전통에 그치지 않고 관광, 레저, 스포츠 상품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경마라고 하면 무조건 도박으로 보며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서울 용산의 ‘장외발매소(일명 화상경마장)’가 단적인 예라고 하겠다. 축산농가에서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운 말이 한낱 화투장 같은 도박용품 취급을 받을 때면 한없이 서글퍼진다.

한국 말산업은 이제 걸음마를 뗐다.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신음하던 많은 축산농가가 말을 키우기 시작했고, 젊은 축산 농부들이 함께 모여 외국 사례를 보고 배우며 공부하고 있다. 부디 우리 국민이 농부의 애절한 마음을 이해하고, 말산업과 경마에 대해 넓은 마음으로 지켜봐주길 희망한다.

강영종 < 한국경주마생산자협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