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이제 4개월이 다 됐네요.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에요. 오랜만에 책도 많이 읽고 연구원 내 인문학 초청강연도 들으면서 ‘사는 것처럼’ 살고 있어요.”

한낮 기온이 30도 근방을 가리키던 지난 3일 오후, 서울 하월곡동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L2 연구동 앞 정원에서 22개월 만에 과학자로 돌아온 유영숙 전 환경부 장관(58·사진)을 만났다. 조그마한 부채로 더위를 식히는 모습이 그의 말처럼 편안해 보였다.

1990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KIST에 들어가 생체과학연구본부장, 연구 부원장을 거쳐 2011년 5월 환경부 장관에 발탁됐던 유 전 장관. 1년10개월간의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지난 3월 다시 ‘과학자’로 돌아왔다. 현재 직함은 미래융합기술연구본부 분자인식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이다.

“심혈관질환같이 고령화 사회에서 급증하는 질병들의 바이오마커(생체지표)를 찾아내 분석하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병이 발생한 후에는 환자의 고통은 물론이고 사회적인 비용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사전에 찾아내 예방할 방법을 찾는 것이죠.”

1990년 KIST 도핑컨트롤센터 선임연구원을 시작으로 20여년간 생체 고분자물질 연구에 매진해 시스템스생물학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평가받는 유 전 장관은 최근 로레알-유네스코 여성생명과학상을 받았다. 그간 대한화학회 이사, 여성생명과학기술포럼 회장 등을 맡으면서 80여편의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발표했고, 환경부 장관으로서 국내외 환경문제 해결과 과학기술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는 인터뷰 중간 “진짜 하고 싶은 얘기가 따로 있다”며 대한민국 이공계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얼마 전 한 중학교에 강연을 간 적이 있어요. 700여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일상생활 속의 생명과학’이라는 주제로 한 강연이었어요. 한 시간 정도의 강연에 아이들의 눈빛은 초롱초롱했고, 그런 꿈나무들을 보면서 과학자로서의 사명감까지 느껴지더군요. 그런데 강연 후 한 학생의 첫 질문에 저는 쓰러질 뻔했어요. ‘박사님, 그래서 연봉이 얼마나 되나요?’ 가슴이 아팠습니다.”

유 전 장관이 말을 이었다. “과학자가 아이들 눈에는 돈도 못 벌고 안정적이지도 않은 직업으로 보인 것이지요. 한국이 짧은 기간에 고도성장을 하면서 팽배한 물질만능주의가 큰 원인이지만, 문제는 그것이 우리 아이들의 꿈까지 갉아먹는다는 겁니다. 이제는 바로잡아야 합니다. 정부가 나서서 캠페인도 벌이고, 아이들이 선망할 수 있는 스타 과학자도 만들어야 해요. 불안정한 신분, 불합리한 처우를 받는 과학자들을 보고 어떤 아이들이 과학자의 꿈을 꾸겠습니까.” 2002년부터 12년째 ‘이공계 살리기’(스트롱코리아)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한국경제신문에 감사인사도 전했다.

앞으로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강연을 많이 다닐 계획이라는 유 전 장관. 후배 여성과학자들에게도 조언을 했다. “스스로 여성이라는 한계를 지우지 말아야 해요. 이젠 세상이 바뀌어 ‘여성도 일하는 사회’가 아니라 ‘여성이 당연히 일하는 사회’가 됐습니다. 특히 생명의 경이로움을 다루는 생명과학은 섬세한 학문으로 여성들이 이끌어 갈 수 있는 분야입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