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유럽연합(EU) 본부뿐 아니라 한국 프랑스를 포함해 38개국의 주미 대사관을 도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도청 스캔들’이 글로벌 외교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NSA가 38개국의 미국 주재 대사관을 ‘표적’으로 지정하고 도청과 사이버 공격 등을 통해 정보수집 등 스파이 활동을 했다고 보도했다. NSA의 개인정보 수집을 폭로한 전 중앙정보국(CI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으로부터 입수한 비밀문건을 통해서다. 38개국 리스트에는 ‘적대국’ 외에도 한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인도 멕시코 터키 등 우방국도 포함됐다.

가디언은 NSA는 팩스에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자료를 몰래 복사하는 시스템을 이용해 정보를 수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NSA가 이런 스파이 활동을 단독으로 수행했는지 아니면 연방수사국(FBI)이나 CIA와 공동으로 진행했는지는 명확지 않다고 덧붙였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도 이날 스노든으로부터 입수한 내부문건을 통해 NSA가 독일 프랑스 등 EU 국가를 상대로 전화통화와 인터넷 이용 기록을 대규모로 수집했으며 독일이 주요 표적이 됐다고 보도했다. 문건에 따르면 NSA는 독일에서만 매달 5억건에 이르는 통신정보를 수집했다.

EU는 이날 도청의혹과 관련,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독일은 NSA를 기소하는 등 법적대응을 검토 중이다. 자비네 로이트호이서-슈나렌베르거 독일 법무장관은 “우방인 미국이 유럽을 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은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다. 언론 보도가 사실이면 냉전 당시의 적대국에 대한 행위를 연상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주미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확인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 공식 대응할 수는 없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궁지에 몰리고 있다.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은 이날 “폭로에 대해 언급할 수 없다”며 태도 표명을 유보했다. 국가정보국(DNI)은 성명을 통해 “외교채널을 통해 이번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며 “미국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외국 정보를 수집하고 있음을 확실히 밝혀 왔다”고 설명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