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윗길을 가다(56) 설악산 노적봉 한편의 시를 위한 길 / 그곳에 서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김성률 기자]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바윗길이었다. 암벽등반을 접하기도 훨씬 전인 십 수년전 기자는 한 산악잡지에 실린 사진기사를 보고는 그만 반하고야 말았다. 기암절벽을 등반하는 젊은 청춘이 부러웠고 저 멀리 떨어지는 폭포를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는 그들의 웃음이 싱그러웠으며 하늘에서 떨어진 듯한 설악의 풍광에 눈을 잠시라도 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자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클라이머의 유전자는 그로부터도 오랜 시간을 잠복한 끝에 비로소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오래전의 추억을 좇아 암벽등반에 입문한지 여러 해가 지난 오늘에서야 그 바윗길을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여러 해 전 등산학교 졸업등반으로 다녀왔어야 할 바윗길이기도 했다.

사실 '한편의 시를 위한 길'은 난이도로 치면 초급코스여서 등산학교의 졸업등반으로 어울릴만한 리지길이다. 그러나 '한편의 시를 위한 길'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바윗길의 이름이 설악은 물론 우리나라를 통털어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름을 지은이는 경원대 국문과 출신의 산악인 김기섭. '아름다운 시인'으로 표현되는 그의 이야기는 기사 중간에 다시 등장하거니와, 이 길은 산악인의 젊음과 자유와 이상을 상징하며 산악인구의 저변확대에도 큰 기여를 한 기념비적인 바윗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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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로 치자면 나이에 따라 꼭 읽어 두어야할 책들이 있다. 가령 황순원의 '소나기'도 초등학생 때 읽어야 더 감동이 있듯이 바윗길 역시 자신의 등반경력에 맞추어 점진적으로 발전해나가는 것이 맞다. 초보자일 때 제 아무리 어렵고 멋진 길을 간다고 해도 자일에 매달려가게 마련이고 경치가 눈에 들어올 일이 없으니 자신의 실력에 맞는 바윗길을 선택해야 맞을 것이다.

또한 클라이머는 발전하는 자신의 등반기량에 맞추어 등반대상지의 난이도를 점차 높여 가려는 욕구가 있다. 그래서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바윗길을 무시하는 경향마저 있다. 그러나 바위는, 또 바윗길을 모두 평등하다. 더구나 클라이머 뿐 아니라, 설악을 또한 산을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가보고 싶은 길 중의 하나인 '한편의 시를 위한 길'임에랴.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 길을 위해 온전히 1박2일을 바치기로 했다. 서울 잠실역에서 출발하여 설악동까지는 불과 3시간이라는 짧은 시공간의 차이밖에 없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설악산으로 향하자니 마음은 한껏 들뜨기 시작했다.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56) 설악산 노적봉 한편의 시를 위한 길 / 그곳에 서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이번 등반에서는 만나기 어렵지만 통칭 삼형제봉으로 불리는 적벽, 무명봉, 장군봉이 눈에 삼삼하고 천화대리지와 돌잔치길 그리고 남성적인 힘을 필요로 하는 울산바위의 비너스길도 기억에 떠올랐다. 설악산에는 아직도 도전해야 할 많은 길들이 기다리고 있다. 삼형제봉의 유선대리지, 토왕골의 솜다리의 추억, 적벽의 자유2836, 교대길과 에코길 울산바위의 인클길과 요반길… 그러나 조급한 마음은 들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도 그 바윗길들은 언제나 클라이머의 건강한 땀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설악동에 하루 전에 도착한 것은 좋았지만 아침식사를 한다 점심을 준비한다 시간을 끌었던 탓에 소공원매표소에서 ‘출입금지구역 허가서’를 받아들고 아직 안개가 걷히지 않은 숲속으로 들어설 때는 8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아직도 고요하게 침잠하고 있는 숲 속에는 그대로 떠 마셔도 좋은 냇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설악산의 바윗길 등반은 출발지점을 잘 찾으면 반은 끝난 것과도 다름없다. 그만큼 어프로치가 쉽지 않다. 자주 다니는 길이 아닌데다가 이정표랄 것도 없어 항상 길을 찾다 헤매기 일쑤다. 하지만 '한편의 시를 위한 길'은 그중에서 가장 접근이 쉬운 바윗길 중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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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원을 지나자마자 왼쪽으로 가로질러 있는 하얀색 비룡교를 건너 약 150미터를 걸어가면 오른쪽으로 소토왕골로 가는 길이 나오는데 이정표에는 '탐방로아님'으로 되어 있으므로 잘 살펴야 한다. 차라리 <'한편의 시를 위한 길' 등반로> 라고 써놓으면 안될까? 암벽등반코스에는 모두가 탐방금지 표지가 되어있는데 이는 일반 보행산행객들을 위한 배려라고 보여지지만 그보다는 보다 정확히 표시를 해놓고 탐방객의 적극적인 이해와 도움을 받는 편이 더 낫지 않나 싶다.

이제는 다 죽어있는 산죽밭을 지나 계속 오르다보면 조금 더 넓은 계곡이 나타난다. 계곡물의 폭이 조금 더 넓어지고 깨끗해졌다싶으면 그곳에서 수통에 물을 받으면 된다. 아직 출입금지 구역 안의 계곡물은 그대로 마셔도 시원하고 맛있다. 소공원을 기점으로 약 30분 정도만 걸어가면 왼쪽으로 '한편의 시를 위한 길' 출발지점이 나타난다. 온사이트 등반이라면 등반경험이 있는 사람과 동행하는 것이 길을 잃지 않는 확실한 방법이다.

'한편의 시를 위한 길'을 등반할 때는 굳이 마디(피치)를 나누지 않는다. 그러나 엄밀히 구분하면 모두 여덟에서 열 마디 정도로 나눌 수 있고 일반적으로는 가운데 피너클 지대를 중심으로 아래쪽을 하단부 그리고 위쪽을 상단부로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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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적봉 정상에서는 여러 번을 클라이밍 다운하고 쌍볼트에서 약 30미터를 하강하면 다시 소토왕계곡으로 내려설 수 있다. 하산시에는 어프로치 때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등반을 통해 하산로가 더 멀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하산시에는 너덜지대로 바위가 많고 낙석이 생기기 쉽기 때문에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곳에서 왕왕 사고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출발지점에 도착하고 보니 이미 앞에는 한 팀이 등반중이었다. 등반모습을 일별하기에 초보자들이어서 오늘 등반은 적지 않게 지체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급하게 오르기보다는 천천히 경치를 구경하며 기자 역시 "한편의 시를 써보겠노라"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은 편해졌다.

첫째 마디는 약 40미터의 구간인데 난이도는 5.6. '한편의 시를 위한 길'은 최고난이도가 5.8(일곱째 마디) 정도여서 고도감만 극복한다면 온 사이트 등반에도 별다른 무리가 없다. 첫째 마디는 약 20미터의 완만한 바위를 올라 오른쪽으로 홀드를 잡고 꺾어져 올라가면 된다. 경사가 별로 없어 자유 등반으로 올라서 주변 경치를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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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앞으로는 달마봉이 아침안개로부터 깨어나고 있었고 왼편 멀리로는 울산바위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설악의 정기를 머금은 적송과 달마봉의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 등반하는 대원들의 얼굴에서 여유와 미소가 가득 피어난다. 그동안 인수와 선인에서 만나지 못했던 설악의 경치가 시시각각으로 펼쳐지기 시작하니 등반은 지체가 되어도 마음만은 한껏 여유롭다.

둘째 마디에 접어들자 저 아래로 소토왕골이 내려다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소토왕폭도 관찰할 수 있다. 첫째와 둘째 마디는 특별한 등반기술이 없어도 안전장비만 착용하면 충분히 등반할 수 있는 수준이다. 굳이 어려운 점이라면 고도감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정신만 바짝 차린다면 초보자도 무리 없이 등반할 수 있다.

거리가 다소 긴 셋째 마디를 안자일렌으로 등반하고 나면 드디어 긴장감을 주는 칼날능선(knife ridge)이 나타난다. 여기가 넷째 마디의 시작이다. 이곳에서 일행은 사람이 누운 모양을 한 독특한 모양의 바위를 발견했는데 별다른 이름이 붙여져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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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가 약 20미터 되는 칼날능선은 홀드가 좋아서 큰 어려움은 없지만 좌우로 내려다 보이는 높이 때문에 갑자기 마음이 짜릿해진다. 비로소 등반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약 20미터의 평이한 지대를 통과하면 이어서 바로 피너클(pinnacle : 암릉이나 암벽 내에 있는 바위의 돌기부) 지대가 나타나니 이곳이 여섯째 마디이자 한편의 시를 위한 길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는 구간이다.

김기섭 시인은 이 구간을 이렇게 노래했다.

피너클 아래 까마득한
소토왕골의
시퍼런 물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가는 이 길은
동해 푸른 바다가 생기고
바람이 생기고
우리가 처음인지도 모른다.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56) 설악산 노적봉 한편의 시를 위한 길 / 그곳에 서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피너클의 홀드를 잡고 등반을 하다 보니 역시 저 아래로 까마득한 소토왕골이 내려다 보였다. 바닥까지의 거리는 약 150미터가 된다고 한다. 그러니 까마득하게 보이고 고도의 차이 때문에 ‘시퍼런 물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 구간은 안자일렌으로 등반하는 것이 편하고 선등자는 피너클에 슬링을 설치해서 안전을 확보해주는 것이 좋다. 피너클 지대에서는 등반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볼만 하다. 앞에서 뒤로 또는 뒤에서 앞으로 어떤 장면을 담아도 한 폭의 그림 같다. 이 구간을 등반하며 김기섭 시인을 한 번 더 생각했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한편의 시를 위한 길'은 시인 김기섭님이 개척한 길이다. 그는 어떻게 이 아름다운 바윗길을 개척할 생각을 했을까? 그가 직접 보내온 비망록을 중심으로 개척 당시의 일들을 다시 정리해 보면 이렇다.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56) 설악산 노적봉 한편의 시를 위한 길 / 그곳에 서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1982년 여름, 악우회 시절의 김기섭은 암벽 등반을 마치고 동기와 함께 설악동-안락암-화채봉-대청봉-서북릉 종주 산행할 당시 안락암 부근에서 노적봉을 바라보았다. 그때 노적봉이 마치 피라미드처럼 멋있게 생긴 데다, 그 등반선이 하단 피너클 지대를 지나 아래 지점으로 길게 이어져 내려, 언젠가 등반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이것이 한편의 시를 위한 길 개척의 동기가 된 셈이다.

1987년 여름, 김기섭은 경원대산악부의 박찬득, 최승욱 등과 그 동안 마음먹고 있었던 노적봉 리지를 등반하려고 소토왕골에서 리지 초입을 찾으려 했지만 한참을 헤매다 지금의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의 좌측 리지로 접어들게 된다. 좌측 리지를 마치고 상단 부근을 통해 등반하던 중 선등자인 박찬득이 그의 몸통만한 바위를 잡고 추락하는 아찔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 상단 등반 라인은 누군가 올라간 흔적이 없었기에 추후에 개척 등반을 하게 된다.

노적봉에 섰을 때 장엄한 토왕성폭포의 전경과, 토왕골 선녀봉을 중심으로 좌우측의 봉우리 풍경이 너무 장엄하게 아름다웠기에 마치 한 편의 장엄한 서사시를 보는 느낌이 들었고 개척 이후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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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등반팀은 리지 초입을 찾느라 등반 시간을 아주 많이 지체하는 바람에 상단을 올라가면서 눈여겨보았던 중앙 벽 우측의 짧은 리지 방향으로 하강을 하게 된다. 이 역시 초행이라 암각이나 작은 나무 밑동에 슬링을 걸고 거기에 의지해 위험한 하강을 밤이 깊도록 했고 그 와중에 자일이 흔들리는 돌들을 건드리는 바람에 크고 작은 낙석이 자주 발생해 공포 그 자체였다고 한다. 등반을 마치고 하산할 때쯤 누군가 등산로 바로 옆 나무에 큰 칼을 걸어놓은 것이 있어 식겁했다고 한다. 소토왕골은 이 지방 무당들의 굿터였던 것이다.

1989년 여름, 경원대산악부의 김기섭, 이종서, 전훈이 청운정을 출발해 노적봉 리지 개척 등반에 나선다. 리지 초입 찾기에 조금 애를 먹다가 본래 리지로 진입. 이종서가 선등하고 김기섭이 볼트 세팅을 하며 올랐다. 이튿날에는 상단을 개척하던 중 많은 비가 내려 등반을 포기하고 등반 장비들을 비 맞지 않게 숨겨 놓고 내려 온다.

삼일 째 되는 날은 날씨가 오락가락 하면서 운무가 끼는 등 좋지 않았으나 그런대로 등반할 만했다. 마지막 피치 개척이 끝날 쯤 하늘이 개이고 건너편 달마봉으로 쌍무지개가 떴다. 마지막 피치를 마치고 정상으로 이어진 아름다운 길을 따라 정상에 섰고 정상에서 토왕골로 펼쳐진 풍광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된다. 그 뒤 상단 등반 루트를 통해 하강한 뒤 중간 지점까지 내려와 좌측 골짜기로 하산한다. 그리고 이름 붙였다.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이라고.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56) 설악산 노적봉 한편의 시를 위한 길 / 그곳에 서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등반로에 ‘산솜다리’가 많아 공개를 꺼렸지만 결국 월간 ‘산’에 공개함으로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김기섭은 이후 노적봉 정상에서 토왕골 쪽으로 바라다 보이는 선녀봉 좌우측 리지인 ‘경원대리지’와 ‘별을 따는 소년들’을 개척하게 된다.

그는 말한다. “부탁하건데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을 등반할 때는 개척자가 만든 본래의 등반선을 따라 등반해주기 바랍니다. 조금 어려운 구간을 빨리 가겠다고 못 쓰는 자일 등을 고정시키거나, 하단을 빨리 가기 위해 좌측으로 다른 샛길을 만들었는데 이는 경우에 많이 어긋납니다. 그리고 등반로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몰지각한 행위는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이 기사가 널리 읽혀진다면, 최소한 이 아름다운 바윗길에서 꽁초를 버리는 일은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15개의 바윗길과 암릉길을 개척하여 산악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한 시인 김기섭님은 안타깝게도 등반중 불의의 사고로 전신불수의 몸이 되어 서울 용답동의 한 재활병원에서 투병하고 있다.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56) 설악산 노적봉 한편의 시를 위한 길 / 그곳에 서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그러나 너무 안타까워하지 말자. 김기섭님과는 그의 블로그(http://blog.daum.net/san62)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로그를 살피다가 혹시 ‘운명’이라는 글을 읽으며 전인권의 노래 운명이 흘러나오더라도 촌스럽게 울지 말자. 아름다운 바윗길 열다섯 개와 산쟁이중 제일이라 할 만한 글재주. 신이 시기할 만도 하지 않은가. 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 적이 있다. 어느 날씨좋은 날 백운대에 올라 일몰과 인수봉을 함께 바라보자고.

다시 등반은 계속된다. 피너클 지대가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작은 암봉을 넘게 되면 약 18미터의 일곱째 마디가 끝나고 이어서 도보구간이 연결된다. 이 지점에서는 탈출로를 찾을 수도 있다.

거리 약 35미터의 여덟째 마디를 등반하고 나면 이어서 난이도가 가장 높은 아홉째 마디가 나타난다. 이 구간에서 직벽 크랙구간을 만나게 되는데 얕보아서는 안된다. 왼쪽 크랙은 습기가 차고 눅눅해서 홀드가 확실히 들어오지 않고 양발의 디딤장소도 썩 좋지는 않다. 때문에 안전하게 캠을 설치하고 등반하는 것이 좋다. '한편의 시를 위한 길'에서 유일하게 캠을 사용해야 하는 구간이다. 선등자는 등반자의 능력을 살펴서 오른쪽으로 우회할 수도 있겠고 슬링줄을 걸어서 초보자의 등반을 도와주는 것도 좋겠다.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56) 설악산 노적봉 한편의 시를 위한 길 / 그곳에 서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마지막 열 번째 마디 직벽에서도 홀드를 잘 찾아보아야 한다. 선등자만 조심해서 올라가면 후등자는 큰 어려움 없이 등반을 마칠 수 있다. '한편의 시를 위한 길'은 워낙 인기 있는 바윗길이어서인지 볼트가 곳곳에 잘 설치되어 있고 쌍볼트도 확실하게 박혀있다.

마지막 크랙을 돌파하면 자일 없이 걸어올라 결국 노적봉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그리고 드디어 장엄한 토왕성폭포와 만난다. 비록 가물어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는 볼 수 없었지만 노적봉 정상에서 바라다보는 토왕폭은 한 클라이머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그 자리에서 기자는 오래된 디지털카메라를 저 멀리 토왕골에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누구나 등반을 하고나면 시인이 되는 곳. 한편의 시를 위한 길. 그곳에서 설악의 품에 안겨 기자도 그만 시인이 되고 말았다.

‘한편의 시를 위한 길’에서

글 김성률

나는 꼭
가보고 싶었지.
이른 새벽 안개를 뚫고
설악의 품에 안겨
피너클을 통과하고
마지막 크럭스를 넘어
가슴 터지게 토왕폭이 보일 때쯤이면
누구나 한편의 시를 쓸 수 있다는
그 바윗길을.

그리고 이제 막
소공원매표소를 지나
둘레둘레 진입로를 살피며
소토왕골에 들어설 때.


고요한 숲,
나지막이 속삭이고
꾀복쟁이로 놀고 싶은 물길은
자유롭게 흘러가고 있었지.

꿈에 기다리던 연인을
처음 만난 그 순간처럼
조심스레 바위를 애무하며
암릉길을 올라 설 때에
나는 한 사람을 생각하며
시상을 다듬고 있었어.

아름다운 시인 김기섭.
신이 재주를 시기한
그 시인을 생각하며
나도 한편의 시를 쓰겠노라
굳게 다짐하고 있었지.

갑자기 솟아오른 그 피너클.
까마득히 아스라한 낭떠러지.
핏줄같은 자일을 굳게 믿고
사랑하는 산친구를 의지하며
안자일렌으로 힘차게 등반할 때
설악의 속살은 거침없이 벗겨졌지.

전람회를 구경하듯 토왕폭을 향해갈 때
감춤 없이 내리쬐던 그 햇살에
땀방울은 코끝으로 톡하고 떨어졌지.

더워도 결코 덥지 않은 건
어디선지 불어오는
한줄기 찬바람 덕분이었어.


마지막 크럭스를 넘어 능선의 끝.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바로 그 지점에 섰을 때
아아 나는
오래된 디카를 저 멀리 던져버리고 싶었어.

그 장려함,
결코 렌즈에 옮길 수 없기에.
그저 그 모습
내 눈 속에 가득가득
담아두고 있었지.

설악과 마주한 그 바윗길.
자유와 맞닥뜨린 그 릿지길.
젊음과 열정이,
사랑과 이상이
그리고 내일로 이어지는 꿈들이

하나로 점철된 그 길.

한편의 시를 위한 길을 등반하고
나는 비로소 시인이 되어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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