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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세인트 폴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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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천자칼럼] 세인트 폴 대성당
    1666년 9월2일 새벽 2시, 런던 시내의 한 빵 공장에서 불이 났다. 소방책임자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불은 삽시간에 도시를 집어삼켰다. 닷새 동안 87채의 교회와 1만3000여채의 집이 불탔다. 런던을 대표하는 르네상스 양식의 세인트 폴 대성당도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대화재가 있기 직전 성당 개축을 제안했던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은 참담했다. 지독한 전염병 때문에 2년간 10만명 가까이 희생된 뒤여서 슬픔은 더했다.

    마침 1년 전 파리에서 건축을 공부했던 그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건축 양식을 참고하며 재건축에 착수했다. 그로부터 45년 만에 그는 화마가 할퀴고 간 자리에 높이 110m의 호화로운 대성당을 완성했다.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 다음으로 큰 성당이었다. 이후 이곳은 예배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행사장으로도 쓰였다. 1965년 윈스턴 처칠의 장례식이 거행됐고, 1981년에는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결혼식이 열렸다. 1차 대전 때는 야전병원으로 쓰이기도 했다.

    지하에는 영국을 대표하는 위인들의 묘가 있다. 재건축의 주인공인 렌을 비롯해 처칠 총리, 넬슨 제독, 화가 레이놀즈 터너,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 ‘피터팬’의 작가 J 배리가 주인공들이다. 나이팅게일도 묻혀 있다. 모두 영국을 빛낸 사람이다. 왕가의 성당인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달리 이곳은 ‘위대한 시민’을 위한 명예의 전당이다.

    프랑스 파리의 팡테옹이 이 건물을 본떴다는 것도 흥미롭다. 웅장한 기둥이 있는 팡테옹의 돔은 세인트 폴 대성당을 빼닮았다. 팡테옹은 원래 루이 15세가 병이 나은 것을 감사하기 위해 파리 수호신 이름을 따 생 주느비에브 교회로 지었다. 1758년에 시작한 공사가 31년 만인 1789년에야 끝났는데 프랑스혁명이 바로 이 해에 시작됐다. 혁명세력에 의해 교회는 왕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국립묘지로 바뀌었다. 이 건물 지하에 빅토르 위고와 에밀 졸라, 장 자크 루소 등 프랑스의 위인들이 잠들어 있는 것도 이런 연유다.

    식료품점 딸로 태어나 세계의 ‘영국병’을 치유한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장례식이 오는 17일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준(準)국장’으로 치러진다. 정부가 국장 수준의 예우를 갖추려 했지만 ‘국가 예산을 낭비하지 말라’는 고인의 유지에 따라 격을 한 단계 낮췄다고 한다. 처칠의 국장 이후 48년 만에 여왕이 참석한다니 그에 대한 영국민의 애정을 짐작할 만하다. 평생 근검절약하며 나랏 돈을 아낀 매기(대처의 애칭)는 이곳에서 위대한 시민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 뒤, 생전 바람대로 첼시안식원 묘지의 남편 옆에 묻힐 예정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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