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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론] 저성장시대, 규제 설계기준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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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시화한 구조적 불확실성
    기업 생존확률 높이는 방향 돼야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시론] 저성장시대, 규제 설계기준 바꿔야
    최근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박용진 전 의원, 이병태 KAIST 명예교수, 남궁범 에스원 고문이 위촉되면서 인선의 적절성과 정책 방향을 둘러싼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공적 기구 인사에는 정치적 균형과 역할에 대한 논의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까.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의 규제를 논의하고 있는가’이다.

    고성장 시대의 규제는 비교적 단순했다. 연 성장률이 8~10%에 이르고 글로벌 수요가 확대되던 1970~80년대, 규제는 속도를 늦추는 비용으로 인식됐다. 허가를 단축하고 절차를 간소화하며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이 곧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 2000년대 성장률이 3%대로 낮아진 저성장 국면에서도 기본 프레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규제를 완화하면 투자와 소비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가 정책의 중심에 놓였다.

    그러나 최근 우리 경제가 마주한 1~2%의 초저성장 시대는 질적으로 다르다. 미국의 고율 관세 정책은 글로벌 통상 질서를 흔들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이스라엘-이란을 둘러싼 군사적 충돌은 공급망과 에너지 가격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이는 일시적 충격이 아니라 상시화한 구조적 불확실성이다. 이제 성장의 속도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이 시대의 규제는 단순히 줄이고 풀어야 할 족쇄가 아니라 기업과 산업의 생존 확률을 좌우하는 제도적 인프라다. 필요한 것은 규제 완화의 강도가 아니라 규제를 바라보는 기준의 전환, 바로 레짐 전환(regime shift)이다.

    레짐 전환은 질문의 전환에서 시작된다. 1980년대 초까지 인텔은 D램(메모리 반도체) 기업이었다. 일본 기업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리며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하자 내부의 질문은 이랬다. “어떻게 하면 일본 기업을 이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D램 원가를 더 낮출 수 있을까.” 기존 사업을 전제로 한 해법을 찾고 있었다. 이때 앤디 그로브 최고경영자(CEO)는 완전히 다른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해임되고 새로운 CEO가 온다면 그는 무엇을 할 것 같은가.” 창업자 고든 무어의 답은 명확했다. “메모리 사업에서 철수할 것이다.” 이후 인텔은 D램을 정리하고 중앙처리장치(CPU)에 집중했다. 그 결정은 PC 시대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었다. 질문이 바뀌는 순간, 기준이 바뀐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얼마나 풀 것인가”라는 과거의 질문에 머문다면 정부가 규제개혁위원회를 규제합리화위원회로 바꾼 것은 이름만 변경한 것에 불과하다. 규제합리화는 완화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규제가 강화되느냐 약화되느냐가 본질이 아니다. 가령 최근 부동산 정책에서 규제 강도는 오히려 높아졌지만, 그것이 곧 비합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핵심은 규제를 얼마나 줄일지가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설계해야 기업의 자본비용을 낮추고 불확실성을 줄이며 생존 확률을 높일 것인가이다.

    신산업은 ‘안전 대 혁신’의 이분법을 넘어 위험을 관리하면서도 실험과 확장을 허용하는 구조로 전환돼야 한다. 제조업은 허가 중심 관리에서 공급망 충격을 분산하는 체계로, 수출기업은 관세·통상 리스크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으로 연결돼야 한다. 규제는 줄이는 대상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낮추는 설계의 대상이다.

    새로 위촉된 세 부위원장의 시험대도 여기에 있다. 그들의 질문이 과거의 완화 논쟁에 머문다면 또 하나의 정치적 수단에 그칠 것이다. 그러나 질문이 바뀐다면 규제는 한국 경제의 위험을 낮추는 해자가 될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인사 논쟁이 아니라 규제 철학의 레짐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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