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기자회견과 공약집을 통해 국민행복기금을 18조원 규모로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이날 밝힌 행복기금의 규모는 채무조정을 위한 연체채권 매입에 사용되는 7948억원과 전환대출의 보증재원 6840억원을 합쳐 1조4788억원이다. 행복기금의 규모가 당초 공약의 10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채무 감면을 받는 실제 대상자 역시 비슷한 규모로 축소됐다. 대선 공약집엔 ‘320만 채무불이행자의 신용회복 지원’으로 명시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 행복기금의 채무 감면 및 장기 분할상환 수혜자는 32만명 정도에 그칠 전망이다. 이들이 감면받는 채무액 역시 많아야 2조2000억원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됐다.

행복기금 규모와 실제 수혜 대상이 공약에서 대폭 후퇴한 것으로 발표되자 대선 때 나온 320만명이라는 숫자는 처음부터 표심을 잡기 위해 부풀려진 것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채무자들이 빚을 갚지 않고 버티는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의 확산 역시 박 대통령의 공약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공약에 나온 숫자는 말 그대로 지원 대상이었을 뿐이다. 이들을 모두 채무 감면 대상으로 본다면 막대한 재원이 소요된다”며 “앞으로 추가적인 조치가 나올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채무탕감과 같은 조치는 대선 때 공약으로 내걸어 예고할 것이 아니라 전격적으로 시행해야 할 사안”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 논란이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된다”고 꼬집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