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를 아끼고 키우는 데 모든 힘을 기울이겠습니다. 개성과 창의를 존중하고,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교육하며 그들에게 최선의 인간관계와 최고의 능률이 보장되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을 다해 나갈 것입니다. 특히 삼성이 50년의 맥을 이어온 엄격한 신상필벌과 학연, 지연, 혈연을 철저히 배제한 공정한 인사의 전통은 영원불변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밝힙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1987년 12월1일 그룹 회장에 취임하면서 이 같은 인재관을 밝혔다. 1993년 6월 신경영을 선언할 때는 “천재가 필요합니다. 소프트웨어 하나를 개발하면 몇십억달러를 간단히 벌어들이고 수십만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합니다. 천재와 인재를 확보하고 집단화해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이 사람을 채용하고 활용하는 핵심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이 회장의 인재관에 기초해 삼성은 신경영 선언 이듬해인 1994년 ‘자랑스런 삼성인상’을 만들었다. 이 상은 삼성의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성과주의 인사 정책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제도다. 이 회장의 전폭적인 관심 속에 발족하자마자 삼성 최고의 상으로 자리잡았다. 제정 당시 수상자에게는 1직급 특별 승격과 함께 1000만원을 시상했으며, 가족 동반 해외여행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특전이 주어졌다. 또 재직 중 2회 이상 수상자로 뽑히면 삼성 명예의 전당 헌액 후보로도 추대된다.

초기에는 △고객만족 △환경안전 △근검절약 △사회봉사 △효행 △공적 등 6개 분야에서 수상자를 뽑아 상을 줬다. 1회와 2회는 각각 12명의 자랑스런 삼성인이 탄생했고 3회에는 9명, 4회에는 7명이 선정됐다.

이후 자랑스런 삼성인상은 세월이 흐르면서 대상과 내용 상금 등에서 더욱 확대됐다. 2011년에는 △공적상 △디자인상 △기술상 △특별상 등 4개 부문에서 9명의 수상자를 선정해 1직급 특별 승격과 함께 1억원의 상금을 부상으로 줬다. 이 회장 취임 25주년을 맞았던 지난해에는 모두 18명이 상을 탔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이 반도체 휴대폰 TV 등 IT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며 신화를 써온 데에는 자랑스런 삼성인상을 통해 성과주의가 임직원들 사이에 퍼지면서 ‘인맥, 학맥 없이도 성과만 보여주면 나도 사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자랑스런 삼성인상은 삼성맨들의 승진 길을 터주는 보증 수표다. 지난해 12월 삼성그룹이 발표한 임원 인사에선 11월에 상을 받은 18명 가운데 9명이 새로 포함됐다.

사장단에도 자랑스런 삼성인상 출신이 부지기수다. 삼성코닝정밀소재의 박원규 사장은 상무 1년차인 2008년에 유리 용해 불량률을 획기적으로 낮춰 원가 경쟁력을 끌어올린 공적을 인정받아 자랑스런 삼성인상을 수상했다. 이 상을 탄 지 5년 만에 그는 사장이 됐다.

조수인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장(사장)은 반도체 신화를 일군 주역으로 자랑스런 삼성인상을 세 차례나 수상했다. 한명섭 디지털이미징사업부장(전무)은 삼성전자 멕시코법인장으로 근무할 때 북미 시장에서 컬러TV 시장 1위를 달성한 공로로 2009년 수상했다. 김창용 삼성전자 DMC연구소장(부사장)은 자랑스런 삼성인상을 다섯 차례 수상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삼성에는 이 상 외에도 또 하나의 커다란 영예가 있다. ‘삼성 펠로우(Samsung Fellow)’라는 명칭이다. 삼성이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핵심 기술인력에게 부여하는 명칭으로 2002년 만들어졌다.

2002년 첫 삼성 펠로우가 나온 뒤 2009년을 제외하고는 올해까지 매년 1~2명의 펠로우를 선정했다. 지금까지 선발된 인원은 총 18명이다. 삼성 펠로우에 뽑히면 개인 연구비가 지급되며, 각종 학회·협회 활동에도 회사의 지원을 받는다. 삼성 펠로우는 자신의 명함에 펠로우 신분을 표기할 수 있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 펠로우는 삼성에서 근무하는 엔지니어로서 최고의 영예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삼성 펠로우 중 가장 높은 직책에 오른 인물은 김기남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이다. 김 사장은 2003년 삼성 펠로우에 선정됐으며, IEEE(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 펠로우이기도 하다. 2007년 초 단행된 삼성 인사에서는 4명의 펠로우가 나란히 부사장으로 승진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