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필자의 회사에서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트렌드 연구의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치열한 경쟁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젊은 사원들로 이뤄진 팀이 선발되었는데, 이들의 계획은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SNS를 활용하는 것만으로 뉴욕을 여행하겠다는 것이었다. 계획을 성공적으로 실행에 옮긴 그들은, 지구 반대편 낯선 곳에 떨어져도 무선 인터넷과 SNS만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고 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이런 여행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스마트 기기의 활용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낯선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 적고 새로운 공간에서의 공간 활용 능력도 크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집을 나서기 전 스마트폰으로 목적지까지의 모든 길을 미리 가볼 수 있게 되었다. 뉴미디어가 제공하는 엄청난 정보가 사람들의 공간에 대한 인식까지도 변화시킨 것이다.

저명한 미래학자 니콜라스 카는 그의 책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인터넷이 우리의 사고 방식까지도 결정한다고 말한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동안 우리의 뇌는 재빨리 집중할 곳을 찾고 정보를 분석하는 동시에, 찾은 것을 볼지 말지를 순식간에 결정한다. 이성적인 인지적 판단(cognition)보다는 즉각적 판단(snap judgment)을 하는 존재로 우리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TV광고에서 중독성 있는 징글(jingle), 즉 광고 음악의 영향이 과거에 비해 커졌다는 조사 결과도 즉각적 판단의 확산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 CM전략연구소에서 조사한 2010년 광고 효과 상위 20개 광고 중에서 13개가 단순 반복되는 징글을 사용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빠르게 이해되고 쉽게 중독되는 것에 열광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사례들은 새로운 기술과 미디어가 우리의 사고방식을 어떤 식으로 변화시키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 속에는 늘 기회가 있는 법이다. 변화하는 소비자의 사고와 행동 방식에 맞추어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마케팅 기법들이 변화의 시대 속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정보 과잉 시대를 살아가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등장한 ‘서브스크립션 커머스(subscription commerce)’가 그 대표적인 예다. 매월 잡지를 구독하듯 소비자가 원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품들을 임의로 선정해 보내주는 서비스다. 구매를 위한 판단 그 자체를 귀찮아 하고 예상치 못한 구매의 즐거움을 즐기는 소비자들을 위한 ‘판단의 대행’ 마케팅이라 할 수 있다.

15세기 중반에 활자 인쇄술이 발명된 이후 몇 세기에 걸쳐 지금의 모습으로 형성되어 온 인간의 사고 방식은 불과 10여년 전 나타난 인터넷의 영향으로 완전히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이보다 큰 변화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변화가 크면 클수록 무궁무진한 새로운 기회가 그 안에 숨어 있을 것이다. 그 기회를 어떻게 찾아내는가는 우리의 몫이다.

문종훈 < SK마케팅앤컴퍼니 사장 jhm@sk.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