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가격이 매매가의 70%에 달해도 대출을 받아 전세만 구해요. 집값은 싸지만 더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고객들이 대부분입니다.”(서울 잠실동 에덴공인 김치순 사장)

그동안 전세가율(매매값 대비 전셋값)이 갖고 있는 부동산시장에서의 통상적 ‘지표개념’이 깨지고 있다. ‘전세가율 60%’는 임차인들이 주택매매에 관심을 갖고 직접 매수에 나서는 ‘터닝포인트’였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전셋값은 상승하는데, 매매값은 오히려 빠지고 거래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내년 부동산시장에서 전세가율 60%가 매매값과 동조를 보이려면 거시경제 상황과 정부의 주택시장 활성화 대책 시행 여부가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 상반기까지 전셋값 더 오를 듯

전세가율은 9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광주(77.7%)와 대구(74.1%) 등 일부 지방 광역시는 전셋값에 수천만원만 보태면 집을 매입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전세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의 경우 내년 2, 3월 전세 재계약 가구가 각각 2만5000가구로 월 평균(2만가구)보다 5000가구가량 많다. 봄철 전세난이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분양마케팅업체인 내외주건 김신조 사장은 “서울에서 내년 1분기 전세 재계약이 집중돼 있고 1~2인가구 등 신규 가구는 꾸준히 늘어 전세가격이 다시 들썩일 수 있다”고 말했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최근 시장 상황을 보면 집은 안 사고 전세만 선호해 전세가격이 오르고 있다”며 “주택 수요자들이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 전세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전세·매매 디커플링 심화

전문가들은 ‘전세가율 60%’ 돌파 후 매매가격 상승세로 이어진 2000년대 초반과 현재 부동산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부동산 경기 상승기인 2003년 전후에는 ‘전세가격이 2년 정도 오르고 전세가율이 60%를 넘으면’ 자기 집을 가지려는 매매수요가 크게 늘었다. 김현아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당시는 저리로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집을 살 수 있었지만 전세대출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경기 하락기에는 이 같은 전세수요의 ‘매매전환’ 현상이 방향성을 잃고 있다. 몇 년째 전셋값은 오르지만 집값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2000년대 초반과 달리 지금은 매매가격이 빠지면서 수요자들이 자가 보유에 대한 환상이 많이 깨졌다”고 말했다. 김현아 연구위원도 “전세대출과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비슷한 상황에서 집값 하락으로 손해를 볼 수 있는 자가(自家) 보유보다는 원금(보증금)이 보장되는 전세를 선호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내년 주택 거래 늘어날까

전문가들은 전세가율과 함께 대내외 경기 변수가 주택거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연내 취득세 감면 혜택이 종료돼 내년 초 극심한 거래 부진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부동산 개발업체인 피데스개발의 김승배 사장은 “대선 이후 정부가 내수 경기 활성화에 초점을 맞출 경우 부동산 거래도 활기를 띨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팀장은 “소형 아파트 중심으로 거래가 늘어날 것”이라며 “건설사들의 골칫거리인 대형 미분양 주택 등은 관심이 여전히 낮고 대형 아파트도 찬밥 신세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선덕 소장은 “내년 상반기 서울에서 전세가율이 60%에 육박하고 거래도 자연스럽게 뒤따를 수도 있다”며 조심스럽게 전세가격이 거래 증가를 이끌 것으로 전망했다.

김진수/김보형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