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주의 앞에 학력, 성별, 국적 모두 파괴된 것 같다.”

LG전자와 LG생활건강 등 4개 LG 계열사 정기 임원 인사가 있은 28일. LG그룹 임직원들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36년간 세탁기 외길을 걸으며 LG 트롬 세탁기를 세계 1위로 만든 조성진 LG전자 세탁기사업부장(부사장)은 LG 내 첫 고졸 출신 사장이 됐다. 만년 2위였던 LG 섬유유연제를 1위로 끌어올린 이정애 LG생활건강 상무는 LG 공채 출신 여성으로 사상 처음 전무 자리에 올랐다. LG전자 내 유일한 외국인 전무였던 짐 클레이튼 전무는 사내 유일한 40대 부사장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시장 선도를 내세우며 ‘인화의 LG’에서 ‘성과의 LG’로 변신하려는 구본무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LG전자, 시장 선도 사업 보상

이날 인사 명단에 포함된 38명의 LG전자 승진자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사장으로 승진한 조성진 부사장. 국내 기술로 세탁기를 만들지도 못한 때에 세탁기 사업을 맡아 2008년 이후 LG 세탁기를 세계 1위로 만들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LG전자의 세탁기와 냉장고 등을 담당하는 HA사업본부장(사장)으로 이동해 LG 생활가전 사업을 총괄한다. LG전자는 지난해 고급형인 드럼 세탁기시장에서 20.7%의 점유율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전체시장에서도 10.9%로 세계 1위다. 삼성전자와 미국 월풀은 각각 7.1%다.

HA사업본부장으로 일하던 신문범 LG전자 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해 중국법인장을 맡는다. 2006년 인도마케팅 담당 부사장으로 취임해 삼성전자에 뒤지던 인도 시장에서 가전 부문 1위에 올랐다. 인도에서 사업뿐 아니라 사회공헌활동에도 앞장서 2009년 인도 유력 경제지 이코노믹타임스가 선정하는 100대 기업인 명단에 한국인으로는 처음 선정되기도 했다. 작년 12월 HA사업본부장에 임명돼 1년간 냉장고와 세탁기 사업을 세계 1위 수준으로 만든 데 기여해 사장으로 승진했다.

신 사장 밑에서 냉장고 사업을 이끈 박영일 LG전자 냉장고사업부장(전무)은 전무 승진 2년 만에 부사장으로 발탁됐다. 세계 최대 용량인 910ℓ 냉장고를 내며 LG 브랜드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TV와 PC 사업을 하는 HE사업본부에서 일하고 있는 짐 클레이튼 부사장은 신사업을 발굴해 사업화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LG전자가 주력 사업으로 밀고 있는 스마트TV의 핵심칩을 개발한 최승종 상무도 전무로 승진했다. 스마트기기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스마트비즈니스센터 이삼수 전략기획담당 부장도 상무가 됐다.

구본무 회장이 챙겨온 연구·개발(R&D) 부문에선 처음으로 부사장급 임원이 나왔다. 북미 모바일 TV 표준화를 주도해온 곽국연 수석연구위원이 처음으로 부사장급 수석연구위원이 됐다. 소프트웨어 플랫폼 전문가인 민경오 연구위원도 전무급으로 승진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란 시장 점유율을 높여온 김종훈 이란법인장도 상무 승진 2년 만에 전무가 됐다.


◆여성 임원 발탁도 대세

전무에 오른 이정애 LG생활건강 생활용품사업부장은 이화여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86년 LG생활건강의 전신인 럭키에 입사해 2009년 상무로 승진하며 퍼스널케어마케팅부문장을 맡았다. 지난해부터 생활용품사업부장으로 일해왔다. 여성 특유의 통찰력과 감각으로 섬유유연제를 1등으로 끌어올리고 친환경 제품 등 신시장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LG생활건강 내 더페이스샵 마케팅 부문장인 김희선 부문장도 상무로 승진해 여성 임원 반열에 올랐다. 1998년 LG생활건강에 입사해 2010년에 더페이스샵 마케팅부문장을 맡았다. LG생활건강의 ‘숨:’ 브랜드를 일본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김병열 내츄럴마케팅 부문장도 상무로 발탁됐다.

LG상사에서는 해외 자원 개발과 미래 사업에 공로가 많은 인재들이 명단에 올랐다. 해외 자원의 효율적 투자 구조를 만든 허성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조림 및 석탄 사업 등 회사의 미래사업 개발에 힘써온 송치호 인도네시아 총괄 전무도 부사장이 됐다. 석탄 개발 사업에서 성과를 낸 윤춘성 석탄사업부장(상무)도 전무로 발탁됐다.

LG실트론은 웨이퍼 생산성 향상과 원가 개선에 기여한 한시재 연마웨이퍼 생산본부장을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 발령했다. 한 신임 전무와 함께 웨이퍼 기술을 개발해온 이홍우 기술개발부장도 상무가 됐다.

LG 관계자는 “학력이나 성별, 국적, 출신지역 등은 고려하지 않고 시장 선도 성과를 중심으로 승진인사를 단행했다”며 “향후 인사에서도 같은 원칙이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인설/강영연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