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시장 침체와 문화재청의 고도 제한으로 진행이 지지부진한 세운상가 개발사업(세운 녹지축 사업)에 대해 전문가들이 세운상가를 철거보다는 보존하면서 개발하자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시도 세운상가의 현대적 리모델링에 초점을 맞춘 재정비 방향을 연내에 확정할 예정이어서 세운상가는 자리를 지킬 수 있을 전망이다.

강병근 건국대 건축설계학과 교수는 26일 열린 ‘세운지구 재정비 방향에 관한 심포지엄’에서 “세운상가 축과 주변 일대를 서울의 대표 역사·문화·관광 특구로 설정하고 남북녹지축을 입체녹지화해 녹색 에너지 생산 기지로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남북 세운상가 축을 대규모 중저가 관광호텔 군으로 조성하고, 2구역에는 식당가와 소규모 판매시설 등을 들여 관광·쇼핑 특구로 만들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종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도 “종묘와 남산을 잇는 ‘남북 녹지축’을 회복하겠다는 세운녹지축 사업은 역사적으로 근거가 없고 조망축과 경관을 우선해 생태적이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컴퓨터 등 가전제품 점포들이 입주해 1970~1980년대 한국 전자산업의 메카로 도심 최대 상권으로 부상했던 세운상가는 1980~1990년대 용산 전자상가와 하이마트, 전자랜드 등에 밀려 슬럼화가 진행되면서 흉물로 전락했다.

이에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006년 세운상가 일대(43만8585㎡) 부지를 재정비촉진구역으로 지정, 1조4000억원을 들여 세운상가 등 8개 건물을 허물고 1㎞ 길이의 초록띠 공원을 만든 뒤 주변에 최고 36층(122m) 높이의 업무시설들을 짓기로 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이 2010년 5월 세계문화유적인 종묘 경관을 이유로 신축 건물 높이를 122m에서 62m로 낮추라고 요구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층수가 낮아지면서 사업 수익성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세운상가 주상복합신축사업 시공권을 2007년 1200억원에 수주한 대우건설은 5년째 사업이 늦어지면서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연장을 위해 162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했다. 대규모 재개발 사업에 부정적인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이후에는 사실상 사업이 중단됐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