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 검사’ 신분으로 성추문을 일으켜 물의를 빚은 전모 검사(30)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이 26일 법원에서 기각됐다. 영장 기각 사유는 ‘뇌물죄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취지여서 검찰은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법조계에서는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한 검찰의 오판 때문”, “전 검사 ‘봐주기’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냐” 등 검찰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 검사 파문 조기 진화에 나섰던 검찰도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수원지검 등에서 평검사들이 첫 회의를 열고 지검장들도 대검찰청에서 회동을 갖는 등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이날도 이어졌다.

◆“검찰 혐의 적용 자체가 잘못됐다”

이날 전 검사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를 담당한 위현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뇌물죄 성립 여부에 상당한 의문이 있다”며 “전 검사에 대한 윤리적 비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구속의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위 부장판사는 또 “당시 상황이 모두 녹취돼 있어 증거 인멸 가능성이 낮고, 전 검사가 수사에 임하는 태도에 비춰 도망할 염려가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법조계는 “검찰이 전 검사에게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부터 기각은 예상됐던 일”이라며 검찰을 비꼬았다. 한 부장판사는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대가 관계가 인정돼야 하는데, ‘전 검사의 강압으로 성폭행당했다’는 여성 측 주장에 따르면 뇌물수수죄 적용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판사도 “법관이 뇌물수수 혐의를 인정해 구속영장을 발부하기 어려웠던 사안이었다”며 “차라리 공갈 혐의를 적용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뇌물수수 혐의는 여성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취지의 ‘물타기’였다”고 비판했다.

◆방향타 잃은 검찰…평검사 회의 잇따라

수원지검·수원지검 성남지청, 대구지검 소속 평검사들은 이날 일제히 평검사 회의를 열었다. 앞서 몇 차례 평검사 회의가 열린 적 있으나 현직 검사 비리 사건과 관련해 회의가 소집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모인 평검사들은 ‘이대로 가면 망한다’는 위기 의식 속에 실현 가능한 방안을 모색, 검찰 수뇌부에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줄이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이날 대검청사에서 세 번째 검사장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는 대구·부산·광주·울산·전주·제주지검장과 대검 간부 등이 참석해 중수부 폐지와 상설특검제도 도입,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기소대배심제 도입 등 다양한 검찰개혁 방안을 논의했다. 회의에 참석한 검사장들은 “감찰기구를 검찰 외부에 설치해 독립적으로 활동하게 해야 한다”, “민간이 참여한 검찰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그 논의 결과를 수용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을 내놓았다.

전 검사 사태의 감독 책임을 지고 사의를 밝혔던 석동현 서울동부지검장(52·사법연수원 15기)은 이날 퇴임했다. 석 지검장은 퇴임식에서 “검찰이 이 사회의 모든 불의와 비리를 발본색원하겠다는 지나친 과욕은 이제 좀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장성호/이고운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