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스토리는 어쩌면 무조건적이다. 대개 어떤 계기로 만나 첫 눈에 반한 데서 러브스토리는 시작된다. ‘계기’와 ‘끌림’이 조건이라면 조건이다. 희극으로 끝나든 비극으로 끝나든, 주인공들의 놀랄 만한 ‘열정’도 반드시 끼어든다.

지난달 말 미국 동부지역을 강타한 초강력 허리케인 ‘샌디’도 러브스토리를 만들어 냈다. 주인공은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주 주지사(공화당)와 버락 오바마 대통령(민주당)이다. 당초 미트 롬니 공화당 대선 후보의 최대 지지자였던 크리스티는 샌디에 대처하는 오바마의 행동을 극찬하며 오바마 지지로 돌아섰다. 그의 지지 선언은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에 큰 힘이 됐다는 분석이다. 일부 언론은 이를 ‘샌디의 러브스토리’로 명명했다.

물론 정치나 비즈니스에서 러브스토리는 남녀관계처럼 맹목적이지 않다. 뭔가 주고받는 거래가 있게 마련이다. 샌디의 러브스토리도 마찬가지다. 크리스티는 롬니가 자신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해 주기를 바랐다고 한다. 기대가 무너지자, 샌디를 계기로 등을 돌렸다는 분석이 그럴 듯하게 나돌았다.

열정 가득찬 美 플립보드社

이달 초 방문한 미국 신생 모바일 기업 플립보드(Flipboard)에도 러브스토리가 한창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인근 팔로알토 지역에 자리잡은 이 회사의 사무실은 주택가 작은 미술관을 개조해 만들었다. 어떻게 일하나 싶을 정도로 좁디 좁았지만, 40여명 직원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뜨거웠다. 사무실이 좁아 옆 카페에서 만난 공동창업자 에반 돌(30)은 “네덜란드와 한국 등 다양한 국가 출신으로 구성된 우리는 모바일 소셜매거진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한 열정으로 뭉쳤다”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플립보드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은 돌 자신이다. 애플에서 아이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던 돌은 성공한 벤처기업가로 꼽히는 마이크 맥큐(45)를 만나 모바일 기반 소셜매거진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2년 전 탄생한 플립보드는 이용자 수 2000만명을 넘어설 정도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열정을 매개로 한 돌과 맥큐의 러브스토리가 성공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철수’식 연애담의 결말은?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웅진코웨이의 러브스토리는 일방적인 구애가 결실을 얻은 경우다. MBK는 웅진코웨이에 끌려 지속적으로 구애를 보냈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중국 캉자그룹과 KTB PE에 연이어 걷어차였다. 결실을 얻으려는 순간, 혼주(婚主)격인 웅진그룹이 훼방을 놓았다. 비극으로 끝날 것 같은 러브스토리는 참관인들의 강권으로 겨우 희극으로 돌아서는 모습이다. 장애물을 넘으려는 열정이 러브스토리의 성공 조건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정치권에도 러브스토리가 한창이다. 다름아닌 ‘문철수식 러브스토리’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 간 단일화 논의가 그것이다.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는 앞에서 본 경우와 약간 다른 것 같다. 상대에 대한 떨림이나 열정은 상대적으로 적어 보인다. 무조건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당위가 앞서는 느낌이다.

그 당위론이 너무 강해 두 사람 간 러브스토리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문제는 그 과정이다. 러브스토리 성사과정에서 열정과 떨림을 얼마나 보여주느냐 여부다. 이를 끝내 보여주지 못한다면 러브스토리의 희극적인 결말(대선 승리)을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영춘 증권부장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