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학동역 부근에 있는 로얄앤컴퍼니 서울 사옥의 박종욱 사장(50) 방에는 커다란 조감도가 걸려있다. 경기도 ‘화성 센터’다. 본사, 연구소, 생산 공장, 전시장 및 갤러리, 연수센터 등으로 구성되는 복합공간이다. 대지와 연건평이 각각 10만㎡(약 3만평)에 이른다. 회사 측은 최근 착공한 이 센터에 1200억원가량을 투입, 내년 8월 완공할 예정이다.

이 센터가 업계의 관심을 모으는 건 건설경기 불황으로 대다수 건자재 업체들이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데 반해 대대적인 설비투자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센터는 인천 부평과 주안에 있는 국내 3개 공장을 합친 것의 2배에 이르는 규모다.

로얄앤컴퍼니는 수도꼭지(수전) 위생도기 비데 등을 만드는 업체다. 건설경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런데 이 회사가 설비투자에 나서는 까닭은 무엇일까.

서울 전시장에 들어서면 의문이 풀린다. 이곳에는 ‘로얄컴바스’라는 브랜드의 제품이 전시돼 있다. 욕실시스템이다. 그런데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시스템이다. 샤워모듈, 세면기모듈, 양변기모듈, 수납장모듈, 거울장모듈 등이 각각의 시스템으로 돼 있다. 이 중 샤워모듈의 경우 리모컨으로 물의 양과 온도, 그리고 샤워시간 등을 조절할 수 있게 돼 있다. 해외 출장을 가보면 샤워기에서 갑자기 뜨거운 물이나 찬물이 쏟아져 당황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물을 틀어보기 전에는 온도를 알 수 없어 빚어지는 현상이다. 이 회사는 이들 샤워모듈에 정보기술(IT)을 접목시켜 전자식 샤워모듈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물의 온도와 양, 그리고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다.

물을 쓰는 제품에 전기를 연결하는 것은 누전이나 합선의 염려가 있어 쉽지 않다. 220V를 24V로 낮추고 안전장치를 갖춘 뒤 독자적인 기술을 결합시켜 제품화했다.

세면기모듈 등도 마찬가지다. 미려한 디자인은 기본이다. 이게 바로 ‘로얄컴바스’며 특허도 출원했다. 박 사장은 이를 “신개념 스마트 욕실시스템”이라고 했다. 그는 “건자재 업체들이 가격경쟁으로 승부를 걸 때 고급화를 토대로 우리만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화성에 설비투자를 하는 것도 이런 고급 제품으로 국내외시장에서 승부를 걸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사의 작년 매출은 자회사인 로얄아이도스, 한일수지 등을 합쳐 약 1030억원에 달했다. 이 중 90%는 내수, 나머지 10%가 해외시장에서 일궈낸 것이다.

박 사장은 “내수시장만 바라봤다면 화성 센터를 착공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이 센터는 아시아는 물론 중장기적으로 유럽 등 선진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격경쟁만으로 승부를 걸면 욕실용품 업체의 미래는 암담하다”며 “위험이 따르더라도 고급화된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으로 세계시장에서 승부를 걸 것”이라고 덧붙였다.

로얄앤컴퍼니는 국내 3개 공장과 전시장, 자회사 등을 합쳐 약 500명을 고용하고 있다. 박 사장은 “경기에 따라 고용인원에 변동은 있겠지만 적어도 1000명 정도가 이곳에서 일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중장기적으로 현재보다 500명가량 더 채용하는 것이다.

박 사장은 2세 경영인이다. 로얄앤컴퍼니는 1970년 설립된 업체다. 박 사장의 부친인 박신규 회장(83)은 주위의 권유로 1976년 이 회사를 인수해 운영했다. 외아들인 박 사장은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한 후 1986년 입사해 일본 동도기기에서 1년간 근무한 뒤 영업, 기획, 생산 등 각 분야에서 13년간 경영수업을 받고 1999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았다.

박 사장은 입사 첫날 아버지로부터 두 가지 당부를 들었다고 한다. 첫째, “우리가 매일 송아지 한 마리씩 먹고 살 것은 아니지 않느냐. 사업은 돈 벌려고 하면 안 된다.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는 보람과 성취감에서 해야 한다.” 둘째, “네가 스테이크를 먹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라면도 못 끓여 먹는 사람 앞에서 아무 생각없이 스테이크를 먹었다는 말만 해도 그들한테 죄를 짓는 것이다.”

대쪽 같은 성품으로 근검절약이 제조업의 정신이라고 생각하는 아버지 밑에서 박 사장은 절약을 배우며 경영수업을 받았다. “여름철에 더워서 에어컨을 틀려다가도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를 생각해 못 켠 경우도 많았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런 식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원가를 절감해야만 제조업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매사에 절약하는 그가 돈을 아끼지 않는 분야가 있다. 바로 연구·개발(R&D)과 설비투자다. 박 사장은 “2세 경영인도 제2의 창업을 해야 한다는 각오를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창업자 그늘에서 한 세대가 더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스스로를 깨고 뼈를 깎는 각오로 도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최근 ‘로얄컴바스’ 시리즈를 비롯해 레드, 블루, 블랙 컬러의 싱크대용 수도꼭지, 온도감지 LED(발광다이오드)수전, 터치식 HD(Hidden Display)비데 등 신제품을 줄지어 선보인 것도 이런 각오에 따른 것이다. 최근 3년 새 개발한 제품이 수십종에 이른다. 여기에는 강아지 모양의 재미있는 수도꼭지도 있고 도기 일체형 비데도 있다.

이를 위해 60여명의 개발인력을 두고 있다. 디자인은 외부의 전문디자인 회사와 계약을 맺고 개발한다. 박 사장은 “욕실용품은 유럽 미국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는데 이들과 똑같은 제품을 생산해서는 승산이 없다”며 “한국이 강점을 지닌 IT를 접목시켜 차별화된 제품으로 승부를 걸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화성 센터는 글로벌 시장 개척을 위한 전진기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카페 + 레스토랑 + 문화강좌…사옥이야, 갤러리야?

로얄앤컴퍼니의 서울 사옥 ‘갤러리 로얄’은 단순한 제품 전시공간이 아니다. 갤러리, 북카페, 레스토랑, 문화강좌를 진행하는 강당 등이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지하와 몇 개 층이 탁 트여 있다.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외부에는 정원과 상록수가 푸른 빛을 발산한다. 건축가 민현식 씨 작품이다. 이 건물을 보기 위해 평일에도 대학생이나 디자이너 등이 줄지어 찾는다.

1155㎡(350평) 규모의 부지에 건평 5280㎡(1600평)로 300억원이 넘게 투입된 이 건물에서는 고객을 위한 각종 문화강좌와 미술전시가 열린다. 박종욱 사장은 “학동역 바로 옆에 있다 보니 상권이 좋아 상당한 액수를 제시하며 몇 개 층을 임대해줄 것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고객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열린 전시장으로 꾸몄다”고 설명했다.

그는 틈만 나면 전시장을 찾은 고객들과 만나서 상품에 대해 설명해준다. 때로는 디자인을 공부하러 온 대학생들과도 대화를 나눈다.

박 사장은 1주일에 반은 본사가 있는 인천 제1공장으로 출근해 상품 생산 과정과 품질을 직접 확인하고, 다른 날은 논현동 서울 사옥으로 나와 시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는 “앞으로 준공될 화성 센터도 일부 공간은 가난한 작가들을 위한 작업실과 지역주민들을 위한 공부방 등으로 활용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