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은 인간의 그 어떤 욕구보다 강하다고 한다. 아마 생존과 직결될 뿐 아니라 먹는다는 것 자체가 큰 즐거움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긴 출출할 때 무얼 먹을까 고민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드물다. 그러나 현대인들의 미각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망가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음식맛을 제대로 못 느끼거나 훨씬 강한 맛에 길들여져 있는 게 대표적이다.

가공식품에 들어있는 각종 식품첨가물과 색소 등이 주범이다. 일본에서는 연간 20만명 넘는 사람들이 미각을 잃는다고 한다. 단맛 쓴맛 등 특정 맛을 못 느끼거나 심할 경우 맛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독신 가구가 많고 편의점이 잘 발달돼 패스트푸드의 천국으로 불리는 일본에 특히 이런 사례가 많은 건 가공식품에 포함된 식품첨가물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우리나라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치킨 피자 등 패스트푸드에 익숙해진 아이들이나 여기저기 맛집을 찾아다니는 어른들이나 식품첨가물에 길들여진 건 매한가지다. 특히 맛집으로 유명한 식당의 상당수가 맛의 비결로 화학조미료(MSG)를 써왔다는 다소 충격적인 사실이 속속 밝혀지는 요즘이다. 조미료와 같은 식품첨가물이 천연 음식재료에 대한 맛을 잃게 하고 점점 더 가공식품에 의존하게 만든 결과다.

망가진 미각은 균형잡힌 식사를 어렵게 만들고 비만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실제 독일 베를린 아동자선병원 연구팀이 6~18세 비만아 99명과 정상 체중아 94명의 미각을 조사했더니 비만 어린이는 정상 체중보다 미각이 훨씬 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뚱뚱한 아이들은 같은 맛을 느끼는 데 더 많은 양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결국 비만으로 이어졌다는 추론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미국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 주도로 도입한 새 학교 급식이 아이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는 소식이다. 미셸은 아동비만 퇴치운동의 일환으로 새 급식법을 제정, 열량을 제한하고 채소와 과일을 두 배로 늘린 ‘오바마표 건강 급식’을 이번 학기부터 제공하고 있다. 새 급식은 열량 제한이 없던 종전과는 달리 초등학생 650㎉, 중학생 700㎉, 고교생 850㎉로 열량을 제한했다. 하지만 상당수 아이들은 새 급식이 맛이 없다고 버리는가 하면 일부 지역에서는 양이 부족하다며 급식 거부운동까지 벌이고 있다고 한다. 급식 반대 학생들이 만든 ‘우리는 배고프다(We are hungry)’라는 동영상은 유튜브에 올라온 지 3주 만에 조회 수 93만건을 돌파했다. 한참 먹을 아이들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한번 길들여진 입맛을 바꾸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기도 하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