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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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진료와 함께 의약품 배송을 경험한 약사 10명 중 6명이 약 배송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약사회 등 직역 단체들이 약 배송에 강경하게 반대하는 것과는 다른 현장의 목소리가 확인된 셈이다. 비대면 진료에 참여한 의사 10명 중 7명도 현재 대면 수령으로 묶여 있는 약 배송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약 배송해본 약사 57.8% “규제 풀어야”

[단독] "약 배송 규제 풀어야"…의사들, 1년 만에 달라졌다
29일 원격의료산업협의회가 실시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1년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에 참여한 의사 중 69.9%는 비대면 진료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한 의사는 2.7%에 불과했다.

시범사업을 경험한 약사도 64.6%가 제도를 긍정적으로 봤다. 원산협이 시범사업 1년을 맞아 비대면 진료에 참여한 환자 1506명, 의사 113명, 약사 161명을 조사한 결과다. 업계 차원에서 환자와 현장 의료인을 전면 조사한 것은 시범사업을 시작한 후 이번이 처음이다.

약 배송 규제로 대면으로만 약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의사와 약사, 환자 모두 불만이 컸다. 시범사업을 경험한 의사 중 59.5%가 현행 대면 수령 제도를 부정적으로 봤다. 약을 바로 타지 못한 환자의 불평 응대(74.2%·중복 응답 허용), 진료의 질과 상관없이 약 수령 절차에 대한 불만으로 작성된 부정적 리뷰(53.0%) 등이 이유였다.

비대면 진료와 함께 약 배송도 허용돼야 한다고 답한 의사가 71.7%나 됐다. 조사에 참여한 한 의사는 “비대면 진료를 받은 후 약국에 직접 가서 약을 타라는 건 인터넷뱅킹으로 송금하고 돈은 은행에 가서 찾으라는 격”이라며 “주소지 오류, 오남용 문제는 플랫폼이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약 배송은 대한약사회가 오남용 우려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사안이다. 하지만 실제 환자를 대면하는 현장 약사를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선 다른 목소리가 확인됐다. 시범사업에 참여한 약사 10명 중 4명(40.4%)이 비대면 진료 시 약 배송도 허용돼야 한다고 답했다. 코로나19 시기 약 배송을 경험한 약사로 한정하면 이 비율이 57.8%로 뛰었다.

원산협 관계자는 “약 배송을 해본 현장 약사들이 효용성을 더욱 체감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현재 약국업계는 ‘환자 노쇼’로 불편함을 겪고 있다. 비대면 진료를 받은 환자가 약을 찾으러 오지 않거나 ‘택배가 안 되면 처방을 취소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대면 수령 제도에 부정적으로 답한 약사들은 그 이유로 비대면 조제를 신청한 환자를 무한정 기다려야 하는 점(76.1%), 의약품 재고 확인 전화에 일일이 응대해야 하는 점(58.7%)을 꼽았다. 한 약사는 “배송업체를 관리해 배송 오류를 줄이고 오남용이 우려되는 의약품은 세밀하게 지정해 장기 처방을 할 수 없게 한 후 약 배송을 허용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현장 의료인 의견 반영 절실”

환자도 약 배송에 긍정적이었다. 방문 수령과 약 배송을 모두 경험한 환자의 83.7%는 약 배송에 더 만족했다. 92.7%는 약 배송이 허용된다면 비대면 진료를 더 자주 이용할 것이라고 했다. 한 환자는 “의료 취약 지역에 살고 있어 약이 없으면 두세 시간 차를 끌고 다른 지역 시내권으로 나가야 하는 일이 다반사인데 약 배송이 허용되면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비대면 진료 이용자는 “정신적 무기력증 때문에 밖에 한 걸음도 나갈 수 없을 때가 있었다”며 “나 같은 사람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과 정책 간 괴리도 확인됐다. 조사에 참여한 의사의 80.5%, 약사의 78.9%는 정부와 국회가 현장에서 실제 비대면 진료에 참여하는 의사와 약사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의사 87.6%, 약사 92.5%는 비대면 진료 법제화 때 직역 단체 대표뿐만 아니라 현장 의료인의 의견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산협 관계자는 “의사와 약사가 정책 수립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며 “현장 의견을 반영한 제도화 논의가 본격화돼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비대면 진료는 팬데믹과 의료대란 등 특수 상황에서 시범사업 등 한시적 형태로 운영돼왔다. 국민 1400만 명이 이용하는 보편적 의료 서비스지만 여전히 법적 근거가 미비하다는 의미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