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판매를 조건으로 국내 TV홈쇼핑 업체인 N홈쇼핑의 상품기획자(MD·merchandiser)와 제품 납품업체 간 수억원대의 금품이 오간 정황을 검찰이 포착하고 수사에 나섰다. TV홈쇼핑 업계가 납품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다른 TV홈쇼핑 업체는 물론 유통업체 중 MD의 영향력이 센 대형마트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검은 거래(리베이트 제공)가 있는지도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박근범)는 24일 “TV홈쇼핑을 통해 건강기능식품 등의 제품을 판매할 수 있게 해주는 조건으로 납품업체로부터 4억2000만원의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N홈쇼핑의 전직 MD 전모씨(32)를 지난 21일 구속하고 그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MD는 소비자에게 팔릴 만한 상품을 선택하고, 이를 최소 비용으로 사들여 매장이나 쇼핑채널에 내놓는 일이 주 업무다. N홈쇼핑의 지난해 매출은 8600억원으로, 업계 5위 규모다.

검찰에 따르면 전씨는 2010년부터 2011년까지 TV홈쇼핑 프로그램에 내보낼 제품을 선택하고, ‘황금시간대에 배정해 줄 수 있다’는 식으로 식품과 의류업체 등 7곳 에서 각각 1000만~1억원가량의 금품을 받은 혐의다. 검찰 관계자는 “납품업체 관계자 2명에게서 방송 청탁의 대가로 전씨에게 금품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했으며, 전씨도 일부 인정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 전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청 간부인 전씨의 아버지 계좌에서 거액의 돈이 입·출금된 정황을 파악하고 돈의 성격을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전씨가 아버지 계좌를 자금세탁에 사용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심하고 있다. 식약청 위해사범중앙조사단 팀장으로 근무했던 전씨 아버지는 최근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라 직위해제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전씨가 받은 돈에 대한 용처를 조사하고 있는데, 대부분 사적인 용도로 쓴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러나 전씨가 윗선에 상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이에 대한 수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검찰은 TV홈쇼핑뿐 아니라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 유통업체에서 MD와 납품업체 간 비리에 대한 정보도 수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국내 한 대형마트에서 청과물 담당 MD는 10명 내외로 이들이 전국에서 생산되는 청과물을 모두 조사하고, 매장에서 판매할 상품을 고른다”며 “MD에게 막강한 힘이 집중되면서 납품업체들은 담당 MD에게 잘보이려 갖은 노력을 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MD 리베이트 수사가 다른 유통업체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