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부조직의 이름에 ‘식품’이란 단어를 집어넣은 것은 현 정부가 처음이다. 2008년 2월 말 ‘농림수산식품부’를 발족시킨 것이다. 기존의 농림부와 해양수산부(수산어업정책), 보건복지부(식품산업진흥정책)의 일부 기능을 합친 조직이다.

식품업체들의 기대가 컸다. 식품이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를 책임지는 본격적인 성장산업으로 자리잡을 것이란 희망에 부풀었다. 식품산업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자부심도 뒷받침했다. 농식품부는 업계의 기대에 부응하듯 2020년까지 연매출 10조원이 넘는 국내 식품업체를 5개 육성하겠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2010년 2월 ‘농림수산식품 비전 2020’을 통해서다.

벤치마킹 대상은 세계 최대 식품기업인 스위스의 네슬레였다. 네슬레의 지난해 매출은 836억스위스프랑(약 100조원)으로, 한국에서 가장 큰 식품회사(4조4210억원)의 20배가 넘는다.

꿈속의 '한국판 네슬레'

정부는 전북 익산에 국가식품클러스터인 ‘푸드폴리스’를 조성한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여의도의 80%만한 부지에 2015년까지 총 5535억원을 투자해 아시아·태평양 식품산업의 메카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이곳에서 150여개 국내·외 식품기업들이 10개 연구·지원기관과 함께 첨단 식품을 공동으로 연구하고 개발, 가공, 수출 작업까지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정부의 이런 청사진과 달리 식품업계의 체감온도는 사뭇 쌀쌀하다. 각종 지원정책이 피부로 와닿기에 앞서 다양한 규제들로 압박을 받고 있는 탓이다. 당장 정부의 강력한 가격인상 억제방침에 짓눌려 있다. 맥주 사이다 콜라 등을 만드는 기업들은 정부의 ‘눈치’를 보며 간신히 가격인상에 나섰다가도 무산되는 아픔을 겪었다. ‘신라면블랙’이란 프리미엄 제품을 내놨다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압박에 국내 판매를 접은 업체도 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주도하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놓고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적합업종에 해당하면 관련 사업을 접거나 사업 확장을 자제해야 하는 탓이다. 그동안 2차에 걸쳐 고추장 간장 김치 두부 어묵 조미김 등이 이런 품목으로 선정됐다.

또다시 등장한 '설탕 무관세론'

설탕 할당관세를 놓고도 업계는 초비상이다. 기획재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30%인 설탕 기본관세를 5%로 ‘사실상 무관세’로 낮춰 내년부터 시행하겠다는 내용의 ‘세제개편안’을 지난달 발표해서다. 작년에도 35%였던 설탕관세를 5%로 낮추려다 국회에서 제동이 걸렸던 것을 다시 들고나온 데 대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지난해 국회는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고 국가 간 형평성을 고려해 점진적인 인하가 바람직하다’는 점을 들어 30%까지만 낮추도록 했다.

설탕이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0.04% 수준에 그치는 데다 관세가 사라져 무분별한 수입이 이뤄지면 국내 제당산업이 흔들리게 되고, 결국은 해외에서 비싼 가격에 사들여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의 선진국들도 70~85%의 높은 관세율을 매기고 있는 것은 식품의 기초재료인 설탕에 대한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란 지적이다.

식품산업은 우리 국민의 건강 및 웰빙과 직결되는 만큼 거창한 ‘비전’에 앞서 ‘게임의 룰’을 정하고 그 틀 속에서 자유롭게 기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단순히 규모만 놓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편가르기할 것이 아니라, 영세사업자를 보호하는 범위 안에서 전문화를 유도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손희식 생활경제부장 hsso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