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부장은 철들지 않는다, 다만 나이가 들뿐…
“어이, 식신~!” 소리에 김 대리는 천천히 고개를 든다. 부장이 보고 있던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손짓만으로 부른다. 이젠 대답도 하기 싫다.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민다. ‘나도 돌 지난 아들이 있는 어엿한 가장이건만’, 김 대리는 손가락만 까닥거리며 반갑지도 않은 별명으로 자신을 부르는 부장이 정말 싫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부장 쪽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뗀다. 그리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주문처럼 중얼거린다. ‘부장은 철들지 않는다. 다만 나이들 뿐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데…. 그렇다. “소년은 철들지 않는다. 다만 나이들 뿐이다.” 얼마 전 끝난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김도진(장동건)의 대사다. 드라마에서 40대 꽃미남 4인방은 철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매력이 넘쳤다. 그러나 직장에서 만나는 우리의 상사들은…. ‘신사의 품격’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의 에티켓이라도 지켜주면 좋으련만. 무개념, 몰상식으로 무장하고 스스로의 ‘격’을 떨어뜨리는 ‘공공의 적’들을 고발한다.

○당신만 모르는 당신의 ‘불결한’ 습관

여름만 되면 김 부장의 습관이 어김없이 나타난다. ‘대한민국 아저씨’들의 주특기 중 하나인 바지걷기다. 출근하자마자 ‘덥다 덥다’를 외치며 자리에 앉아 꼭 바지를 무릎까지 걷는다. 종아리에 난 다리털이며, 짤막한 종아리며…. 오후 시간이 되면 더욱 가관이다. 김 부장의 하이라이트 필살기가 나오는데, 바로 양말벗기다. 슬리퍼 사이로 무좀 흔적이 슬쩍슬쩍 보이는 맨발을 드러내는 김 부장. 여직원들은 그의 무릎 아래로는 쳐다도 보지 않는다.

공기업에 다니는 서 과장도 여직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 번은 사무실로 피자를 시켜먹을 때 일이다. 서 과장이 자기가 직접 나눠 주겠다며 침을 손에 묻혀 피자를 김치 찢듯 죽죽 찢는 모습을 보고 모두가 경악했다. 그는 직원들이 가져온 서류도 꼭 손가락에 침을 듬뿍 묻혀가며 한 장 한 장 넘긴다. 여직원들은 서 과장이 검토한 서류는 받자마자 메모를 옮긴 후 분쇄기에 넣어 버리고 다시 출력해서 쓴다.

○제발 이 소리만은…

장 상무의 스마트폰은 팀 직원들에게 고달픈 존재다. 50대 후반의, 귀가 다소 어두운 그의 스마트폰 벨소리는 항상 최고 볼륨으로 세팅돼 있다. 그것도 ‘쿵쾅쿵쾅’ 댄스 뮤직으로…. 스테레오 돌비 사운드처럼 사무실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는 그의 벨소리에 직원들은 일을 하다가도 가슴을 쓸어내린다. 벨소리뿐만 아니라 통화소리도 크다. 전화가 한 번 오면 직원들은 10분 정도는 일손을 놔야 한다. 그러다보니 장 상무의 스케줄에는 비밀이 없다. 목소리도 크고 벨소리도 크고, 노래방이 따로 없는 장 상무다.

패션업체에서 일하는 김 대리는 같은 팀 박 과장의 목소리가 늘 귀에 거슬린다. 일에 관한 얘기 때문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근무시간에 툭하면 업무와 상관 없는 농담을 쩌렁쩌렁하게 늘어놓는 게 견디기가 힘들다. 참다 못해 업무시간에 과도한 농담을 자중해줄 것을 부탁하자 돌아온 답변. “목소리 큰 놈이 일도 잘한다는 ‘일본전산 이야기’ 안 봤어? 백번 양보하더라도 대리가 과장한테 이렇게 얘기하는 건 또 무슨 경우야?” 요즘 김 대리는 집중해서 할 일이 생기면 조용히 필기도구와 노트를 챙겨서 고객접견실로 향한다.

이 외에도 김 과장 이 대리들을 괴롭히는 소음들은 많다. 점심만 먹으면 들려오는 박 부장의 코 고는 소리와 이 부장의 트림 소리, 30분에 한 번꼴로 끓어 오르는 애연가 최 차장의 가래소리, 사무실을 돌아다닐 때마다 주변 사람들을 ‘깜놀’케하는 홍 차장의 방귀소리 등등.

○지지리 궁상

대외 협력팀 최 과장의 별명은 ‘애 주려고’다. 외부 협력업체 담당자들이 간식거리를 챙겨오면 최 과장은 다른 사람들보다 두세 배 많은 양을 챙긴다. 그때마다 늘 하는 말은, “우리애가 좋아하는데, 애 주게 좀 챙겨야지.” 후배 장 대리는 볼 때마다 속으로 혀를 차지만 정작 최 과장 본인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식당에서 남은 음식 싸달라고 할 때 체면치레 하느라 ‘개 주려고…’ 하는 말은 들어봤지만, 저렇게 ‘애 주려고’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처음 봐요.”

노처녀 김 과장은 늘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그러나 가끔씩 김 과장이 도시락을 가지고 오지 않는 날이 있다. 바로 부서의 누군가에게 밥을 얻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을 때다. 한 번은 결혼을 앞둔 이 대리가 김 과장의 레이더망에 들어왔다. “이 대리, 곧 결혼한다며. 밥 한 번 사.” 김 과장은 이런 식으로 신입 직원에게도 밥을 얻어 먹는다.

○식탐왕

유통업체에 근무하는 오 차장은 식탐이 강하다. 먹성이 워낙 좋은 대식가인데, 다른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본인 챙겨 넣기에 바쁘다. 계산은 더치페이인데 먹는 건 블랙홀이다보니, 직원들은 오 차장과는 회식은 물론이고 점심식사와 간식도 피한다. 어느 날 식사 후 양치질을 하고 온 강 과장은 오 차장이 말도 없이 자기 책상에 있는 귤을 까먹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출장 갔을 때 사서 여행용 가방에 넣었던 걸 깜빡 잊었다가 그날 꺼내놓은 귤이었다. 강 과장이 출장을 다녀온 건 1주일이 넘었다.

총무팀 안 대리의 사내 별명은 ‘진공청소기’다. 여러 자리를 돌면서 먹을 것을 모조리 다 흡수하기 때문이다. 그는 출출해질 때가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 팀원들 책상이나 다른 팀 동기들에게 간다. 자리 위에 올려져 있는 음료수나 과자, 껌 등을 거리낌없이 자신의 입으로 가져간다. 너무나 태연하고 자연스러워 말릴 수도 없다. 요즘 안 대리의 팀원들 책상은 항상 깨끗하다. 예전에는 간식거리를 책상에 올려놓고 먹었는데, ‘진공청소기’탓에 이제는 아예 간식을 먹지 않거나 조금은 치사해도 책상서랍에 넣고 먹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안 대리는 이제 간식을 찾아 다른 팀을 떠돌아 다니는 신세가 됐다.

○개구리에게 무심코 던진 돌이…

무역회사에 다니는 황 과장은 직속 상사인 최 차장이 표시하는 친근함이 불쾌하기 짝이 없다. 비싼 미용실에서 파마를 하고 오면 “어디 이발소에서 잘랐어?”라고 한다. 남편이 선물한 옷을 입고 가면 “이 옷은 어디서 또 주워 입었나”란 말이 돌아온다. 일을 깔끔하게 잘했다는 칭찬도 “황 과장은 역시, 일로 승부를 해야 해”란 식이다. 편해서 툭툭 던지는 농담이라지만, 웃음으로 답하기에도 과한 ‘무례’한 수준의 외모에 대한 언급 때문에 황 과장은 종종 울컥한다. “최 차장님, 거울 좀 보세요. 외모 ‘지적질’할 입장 아니거든요.”

윤정현/김일규/강영연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