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스페인·이탈리아 구하기가 속도를 더하고 있다. 미국과 독일, 이탈리아, 유럽중앙은행(ECB) 등의 지도자들은 연일 긴급 회동을 갖고 ECB의 유로존 국채 매입 재개 등 재정위기 해법을 논의했다. 재정위기 ‘시발점’ 그리스에 대한 국채 추가 탕감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위기의 ‘뇌관’ 스페인은 수백년 전통의 시에스타(낮잠) 풍습까지 철폐하며 경제 살리기에 나섰다. 국민들이 낮잠을 잘 시간에 쇼핑을 하면 고용이 증대되고 소득이 늘어난다는 이유에서다.

◆ECB 국채 매입, 동시다발 회의

지난주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스페인과 이탈리아 국채 매입 재개를 시사한 뒤 유럽 각국 정상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 28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가진 전화회의에서 “지금 당장 유로존을 지킬 모든 행동을 하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메르켈 총리는 “논의사항을 최대한 빨리 이행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장클로드 융커 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의장도 29일 “유로존이 붕괴 위험에 처해 있고 더 이상 허비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은 30일 독일 북부 휴양지인 질트섬을 방문, 휴가 중인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과 ECB 국채 매입 문제 등을 논의했다. 드라기 총재도 내달 2일 ECB통화정책회의에 앞서 이탈리아·스페인 국채 매입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옌스 바이트만 분데스방크(독일 중앙은행) 총재와 만나 ECB의 행보를 상의키로 했다.

독일 경제주간 비르츠샤프츠보헤는 “각국 중앙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분데스방크만이 ECB의 유로존 국채 매입에 반대하고 있다”며 “분데스방크가 국채 매입에 동의하는 순간 유럽에는 엄청난 규모의 돈이 풀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에스타 전면 철폐

스페인 정부는 오는 9월부터 시에스타를 전면 폐지키로 하는 등 경제살리기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은 29일 “스페인 정부가 관광 및 내수소비와 고용을 늘리기 위해 300㎡ 이상 면적의 모든 상점과 식당들이 의무적으로 오후 영업을 하도록 관련법을 대대적으로 개정했다”고 보도했다.

시에스타는 스페인 그리스 등 남유럽에서 수백년 동안 관행적으로 행해진 낮잠 풍습이다. 스페인에선 백화점과 일부 대형 슈퍼마켓을 제외하고 대부분 점포가 오후 2~4시에 문을 닫도록 법으로 규정됐다. 대부분의 레스토랑도 오후 시간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다. 점심을 세 시간이 넘도록 먹는 경우도 허다하다.

스페인 정부는 또 유통업체들의 주당 근무시간도 종전의 72시간에서 90시간으로 연장했다. 상업시설의 일요일 근무시간도 연간 12시간에서 16시간까지 늘렸다. 주요 관광지에선 일요일과 공휴일에 24시간 영업도 허용된다. 스페인 통계청은 30일 올해 2분기 스페인 국내총생산(GDP)이 전분기 대비 0.4%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중앙은행도 국채 탕감 참여”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 파견된 ECB와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실사단은 115억유로 규모 그리스 긴축안이 이행될 때까지 그리스에 머물기로 했다. 이에 따라 당초 9월로 예정됐던 실사 발표도 늦어질 전망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실사 결과 발표 연기는 그리스 퇴출 가능성도 뒤로 미루는 효과가 있다”며 “유럽 각국 지도자들이 그리스를 유로존에 잔류시키는 ‘마지막 기회’를 살리기 위해 그리스 국채 추가 탕감 문제를 강도 높게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민간 부문만 채무 재조정을 했던 지난해 1차 탕감 때와 달리 추가 탕감에는 각국 중앙은행이 참여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